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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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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에 해당되는 글 2

  1. 2020.07.16 2600년 전 알타이의 장례식과 미라
  2. 2020.02.20 1인치 공간의 예술

26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에는 높은 곳에 깊은 무덤구덩이를 파고 나무로 된 무덤방을 만들고 말과 함께 매장하는 장례식이 행해졌다. 2600년 전 이전에도 장례식 이후에 축조된 결과물은 다르지만 성대한 장례식은 있었다는 사실은 앞에서 소개한 바 있다

 

파지릭 유적, 바샤다르 유적, 투엑타 유적등 스키타이 문화권 가운데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파지릭문화를 밝혀 낸 루덴코는 자신이 실제로 참석한 카자흐스탄 한 부족의 장례식 기념행사를 적어놓았다. 자신이 발굴한 유적에서 치러진 장례식이 비슷한 모습이었을 것이며, 발트해부터 알타이 북동부 지역까지 오래전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왔을 가능성을 비추었다(루덴코 1960).

 

1927년 루덴코는 카자흐스탄 흑해로 흘러가는 이르티시 강 주변에 있는 한 부족의 장례식을 경험했다. 3월 25일에 죽은 사람의 장례식은 같은해 9월 21일부터 23일까지 치러졌다.

장례식에는 30개의 펠트 마차(펠트마차로 번역이 되지만 문맥 상 일종의 텐트와 함께 겸비된 것으로 일종의 캠핑카?정도로 이해가 된다)가 줄을 있었고, 그 중 5개는 죽은 이의 아들을 위한 것이다. 손님을 위한 것도 15개나 준비되었고 그 중에는 여성을 위한 것도 있다. 손님을 위한 음식은 4마리의 말, 6마리의 황소, 25마리의 숫양이 준비되었고, 2~3개의 큰 용기에 쿠미즈(양 지방 유제품)로 가득채워서 준비했다. 쿠미즈는 선반에 담겨서 옮겼는데, 아주 비싼 카펫으로 장식된 낙타가 행렬을 이끌었다. 낙타뒤에는 여자, 그 뒤에 남자가 서 있었다.

 

손님들도 양과 말을 장례를 위해서 가져왔는데 손님들이 가져온 30마리의 숫양 중에 25마리를 죽여서 손님들을 대접했다. 낮에는 차와 쿠미즈가 간식으로 아침과 저녁에는 고기가 손님들에게 제공되었다. 음식은 특별히 지정된 노지(화덕자리)에서 만들어졌다. 고기는 신선하게 하기위해서 같은 장소에서 죽이고 같은 장소에서 음식을 했다. 음식은 2~4마리의 말이 이끄는 마차에 실려서 손님이 끌고 온 마차로 배달되었다.

루덴코가 본 장례식에는 부족의 허락이 없어서 말 경주 대회가 없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말 경주대회가 장례식에 있었던 것을 그는 나이만족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1896년에 사망한 나이만족이 경험한 장례식은 매우 성대한 것이었다. 3일 동안 장례식이 치러 졌는데, 아주 먼 지역에 있는 사람들도 모였는데, 심지어 해외에서도 왔다. 손님을 위한 텐트(마차)가 300개나 설치되었고, 손님을 위해서 각 마차에 한 사람, 말 한 마리가 배정되었다. 손님들은 쿠미즈(유제품)와 빵반죽을 직접가져왔다.

말 경주는 장례식 전날부터 첫 번째 경주가 시작되었다. 이날은 장례식 음식 준비를 위해서 음식하기 위한 구덩이를 판 날이고, 말 경주가 열린다.  말 경주는 첫 번째와 네번 째 날 열렸다.  네 번째 경주는 장례식 마지막 날 열리는 데 25마일을 달리는 것이었다. 최대 250여마리의 말이 참가했고 그 중에 20마리에게 상이 수여되었다. 1등 말은 말2마리, 낙타1마리와 은을 받았고 나머지 말은 말 1마리를 받았다.

세 번째 대회는 낙타경주이다. 50마리의 낙타가 경주해서 10개의 상이 수여되었다.

 

이러한 성대하고 체계적인 음식문화를 동반한 혼잡한 기념은 부자와 귀족 사이에서 가능했다. 다양한 대회와 음식 때문에 수천명의 사람들이 모일수 있었고 거대한 토루 등의 건설은 짧은 기간에 가능했다.

 

비슷한 광경이 19세기말~20세기 초 뿐만 아니라 2600년 전에도 있었을 것이라고 루덴코는 추정했다. 필자도 이에 동의한다. 6m의 구덩이를 파고 무덤방을 설치하는 작업은 많은 노동력이 동원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20세기 초에 루덴코가 목격한 장례식에서도 3월에 죽은 이를 9월에 묻었는데, 이는 2600년 전 파지릭 문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앞에서 여러 번 이야기 했지만 장례식은 봄과 가을에 치러진다고 했다. 20세기 초에는 그 사이에 시신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2600년 전에는 죽고 나서 묻기 전의  몇 달동안 시신은 미라로 처리해서 보관했다. 

바샤다르 유적의 2호분에는 남성시신은 도둑맞았고 여성시신은 훼손이 심해서 죽은 이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

 

그러나 1호분에는 부패가 심해서 잘 남아 있지는 않지만 미라처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남아 있었다. 미라는 피부가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하지만 이 인골은 두개골과 여러 뼈에 미라처리 흔적만이 남아 있다. 두개골에 구멍을 파고 뇌를 제거한 흔적이 남아 있다(그림1). 아크 알라하-3 유적의 얼음공주 미라도 두개골에 그림 1과 같은 구멍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바샤다르 1호분의 남성미라는 좀 다른데, 경추(그림 2-1), 척추 등에 구멍이 뚫려 있다. 이곳으로 방부제를 투입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10~12번째 흉추(그림 2-2), 나머지 흉추(그림 2-3,4)에 청공되었다. 요추에도 뚫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구멍이 잘 남아 있지 않다. 흉추에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복강(배)은 내장을 추출하기 위해서 개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림 1. 바샤다르 유적 1호분 남성미라의 뇌

 

 

 

그림 2. 바샤다르 유적 1호분 남성미라의 척추

 

미라처리의 관건은 뇌를 제거하고 피부는 남기고 그 밑의 지방과 근육을 제거하는 것인데, 뼈에 구멍을 뚫을 수 있었던 것은 근육이 이미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샤다르 유적 1호분의 남성도 미라이다. 아시다시피, 바샤다르 유적의 1호분은 무덤구덩이가 깊지 않았고, 얼음층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아서 다른 유적에 비해서 유기물질이 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남성 미라의 피부도 없어져 버린 것이다.

 

 

 

참고문헌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중부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에는 시베리아 황금유물 컬렉션이라고 불리는 유물이 소장되었다. 표트르 1세가 시베리아에서 총독이었던 가가린을 통해서 수집한 유물임을 알았다. 그 유물은 수채화로 그려져서 보관되었는데 수채화는 이미 공개한 바 있다. 필자도 수채화를 공간된 책(Scythians: 2017)을 통해서 공개한 것이어서, 한계가 있다. 2017년 영국에서 열린 스키타이유물특별전이 그간 열린 전시회 가운데 가장 크게 열렸다고 전해진다.

 

가가린이 보낸 유물이지만 수채화에는 없는 재미있는 허리띠의 버클이 있다.

길이가 14.5cm, 무게는 180.1m이다. 에르미타주에 소장되었으며, 가가린의 목록에 10번째 유물로 알려져 있다.

두 동물이 싸우는 장면은 스키타이 동물문양장식에서 아주 자주 등장하는 주제이다. 그런데 이 유물에는 뱀과 늑대가 싸우는 장면이다. 늑대는 다리를 구부린채 싸우고 있는데, 뱀은 늑대 몸통을 휘감고 있다. 뱀의 입은 열려 있고, 늑대 머리위에 있다.

뱀과 싸우는 주제는 시베리아 콜렉션 가운데 딱 2점이 알려졌는데 그 중에 하나이다. 그리스 유물에도 뱀이 등장할 때는 독수리와 뱀, 사슴과 뱀이 싸우는 장면만 알려져서 그리스와는 관계없는 유물이다.

 

그림1. 에르미타주 소장, 황금제 버클장식

 

이 유물은 거푸집을 이용해서 제작된 주물기법으로 제작된 것이다. 이 유물의 주물은 세밀하지 않고, 표면을 다듬지 않은 상태이며, 광택은 이 버클을 오래사용한 결과이다. 이 유물에서는 늑대의 달걀모양 귀와 코 앞의 나뭇잎, 꼬리에는 다른 돌을 끼워 넣어서 표현했던 것인데, 상감기법이라고 한다(그림 2-1).

 

그림2.  에르미타주 소장, 황금제 버클장식, 그림1과 같은 유물. 1번은 그림1의 다른 면이다. 그림 2-1을 보면 늑대 코와 뱀 사이의 장식물이 확실히 나뭇잎임을 알 수 있다. 만약에 이 나뭇잎이 없었다면 버클로써의 역할을 못했을 것이다. 

 

이 버클의 뒷면(그림 2-1)에는 늑대의 앞발 아래에 거친 직조물이 붙어 있는 것이 관찰되었다. 이 직조물의 밀집도는 1㎠ 당 16×18정도이다(그림 3).

 

 

 

그림3. 시베리아 황금컬렉션의 유물에 부착된 직조물, 이 중에서 3번째가 뱀과 늑대 싸움의 버클에 붙어 있던 장식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요? 앞뒤면을 다 봐도 걸쇠가 없다(벨트에 달려면 그 부분이 있어야 된다. 불룩 튀어나오면 반대편 가죽 벨트에는 구멍이 있으면 되고, 버클에 구멍이 있으면 반대편에 걸쇠가 밖힌 부분을 만들면 된다. 자신이 가진 벨트를 잘 살펴보시기를...)

 

이 유물은 주물해서 만들어낸 동물문양장식에 사각형 플레임은 나중에 땜질로 붙인 것이다. 짧은 면을 가장 마지막에 붙였다.  이 유물에서 벨트에 고정할 수 있는 공간은 늑대의 코 앞에 붙은 나뭇잎 사이(그림 2-1)의 둥근 원형 구멍이다. 뱀과 늑대사이의 나뭇잎이 있어야만 고정시킬 수 있는 구멍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고정시키는 것은 뱀이었고 뱀 바깥에 있는 사각형 프레임이 있어야 비로소 더 힘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시베리아 콜렉션에서 사각형 프레임의 버클 장식에는 둥근 원형의 구멍이 있는 경우가 또 있다. 이 유물에서 둥근 구멍이 눈에 바로 들어오지 않는 것은 다른 빈공간이 많아서 인데, 다른 유물은 그렇지 않다.

 

디테일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루덴코 1962, Руденко С.И. 1962 :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 САИ Д3-9. М.-Л.: 1962.(루덴코 1962, 표트르 1세 시베리아 콜렉션)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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