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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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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바르부르가지 강의 유적'에 해당되는 글 12

  1. 2020.10.25 알타이의 스키타이 미라 유물4
  2. 2020.10.24 알타이의 미라와 부활3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고대로부터 교통로가 되었던 추야강의 지류인 바르부르가지강에도 스키타이 시대 여러 유적이 산재한다.

그중에서는 바르부르가지 I유적 25호분과 같이 미라가 출토되는 유적도 있지만 대부분 미라는 없다.

25호와 인접한 23호 유적도 스키타이 시대 돌널무덤이다. 23호(위의 덮은 돌 범위 6m, 300×210×200cm)에도 무덤 안에는 2마리 말과 사람 2명이 부장되었다. 그러나 무덤구덩이는 바닥까지 파서 말을 매장했다. 25호와 같이 계단처럼 단을 지게 무덤바닥 시설을 하고 그 위에 말을 매장하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무덤방 바닥에 나무를 깔지 않았다. 출토된 유물도 미라가 출토된 무덤에 비해서 소략한 편이다.

 

그림 1.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23호, 1~3: 마구장식(목제), 4-재갈(철제), 5~8: 목제 목걸이와 이를 덮은 금박종이, 9,10-칼(청동), 11-송곳?, 12-모형 전투용 투부, 13-갈고리 모양 장식(청동), 14-실크 조각, 15- 토기

 

그림 2. 바르부르가지 I유적 23호의 유물

 

그림 3.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25호(미라무덤) 유물, 1-목제쟁반, 2-칼, 3-목제 잔(손잡이가 둥근), 4-의복조각, 5-목걸이를 둘러싼 금박종이 조각

 

그림 4.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25호 유물 2, 6-이마장식, 7,8-목제 말모양 인형, 9-사슴머리, 10-산양몸통의 사슴,11~14-원뿔모양의 펜던트, 15-빗, 16-모형 검, 17-칼, 18-모형의 전투용 도끼, 19~21: 모형 활, 22-화살통 일부, 23-목제 말뚝,

 

그림 5.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25호 유물 24, 25-허리띠 장식, 26~28: 허리띠 장식, 29-전투용 투부에 부착된 장식판, 30-화살통 장식, 31,32-단추, 33-멧돼지 송곳니 모양 장식, 34-거울, 35, 36-물고기 모양의 장식. 37-토제 항아리, 38-돌 베개, 39-아주 얇은 가죽, 40-펠트조각

 

2020/10/2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바르부르가지 강의 유적] - 알타이의 미라와 부활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25호 바로 북쪽에 위치한 26호 무덤(직경 9.5m, 300×250×220cm)은 상황이 약간 다르다. 나무무덤방 안에 2인이 매장되었고, 말 2마리가 있었다. 나무무덤방은 긴 나무통을 그대로 이용해 동서의 단벽을 쌓고 남북의 긴 벽을 이용한 무덤이다. 바닥에는 통나무를 깔았다.

 

그림 6.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26호, 1,5-철제 재갈, 2,3-구멍 뚫린 장신구, 4,6-동물장식이 달린 재갈멈치, 7-이빨모양 장식판, 8- 동물문양장식금판, 9~12: 새 모양 장식판(금판), 13-산양뿔 모양 장식판, 14, 15-원뿔모양 장식판, 16-목걸이, 17,18-거울, 19-20-펜던트, 21,22-칼, 23-끈 벨트의 걸쇠, 24-단추형 장식판, 25-목제 검집, 26-목제 쟁반, 27-2개의 토제 항아리, 28,31-돌 베개, 29-검은색 물감의 범위, 30-허리띠 장식판(1,22,25-철제, 2,3-뼈, 4,6,14,24,26,28,30-목제품, 5, 17-21,23-청동제, 7-13, 15-금박, 16-청동+목제, 27-토제, 31-돌)

 

그림 7.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26호 유물

 

 

 흥미로운 점은 미라가 나온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25호 바로 남쪽에 위치한 24호로 명명된 무덤은 사실 무덤이 아니었다. 위에만 돌을 직경 5m가량으로 덮고 그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23~25호가 거의 붙어 있는 무덤이었고, 25호 북쪽에 위치한 26호무덤은 약간 떨어져서 확인되었다. 23~25호는 동시대에 만들어진 무덤이고, 26호는 무덤의 시설물과 유물의 차이로 보아서 시간차이가 있을 수 있다. 특히 25호 무덤에서 나온 목제쟁반(그림 3-1)은 이제까지 출토된 쟁반과 달리 바닥에 받침이 붙은 모습이다. 당장 26호에도 목제쟁반의 바닥(그림 7-26)은 편평하다. 이 유물 26호와는 시차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차이가 어떤 의미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죽은 이를 미라로 만든 무덤과 그렇지 않은 무덤(23호)은 말의 부장과 무덤시설에는 크게 차이가 없지만, 미라가 들어간 무덤의 유물은 의례용 무기를 더 넣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단순한 비교이고,  최소한 같은 유적에서 같은 시간대에 만들어진 무덤 안에서 비교할 때 좀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2 : Курганы Сайлюгема. Новосибирск: 1992. 22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에서 고대로부터 교통로로 사용되어 온 추야강의 지류인 유스티드 강과 울란디르크 강 유역의 유적을 살펴보았다. 추야강의 또 다른 지류인 바르부루가지 강에서도 흥미로운 유적이 발견되었다.

 

바르부르가지I유적에서는 모두 30개의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져서 확인된다. 남쪽에는 1~18호, 북쪽에는 21~30호가 있다. 두 그룹 사이로 현대에 들어와서 만들어진 수로가 지나가는데, 붕괴되었다.

 

이 유적에서는 이제까지 본 무덤과는 약간 다른 구조의 무덤이 발견된다. 그 중에서 25호 무덤에는 남성미라 1구가 발견되었다. 미라로 처리한 부위는 두개골, 손, 발로 피부상태가 좋았다. 그 외의 부위는 거의 잘 남아 있지 않다. 무덤은 돌판을 무덤으로 쓴 돌널무덤(석관묘)이다. 석관묘의 바닥에는 4개의 나무판을 깔았고 석판을 여러 겹으로 겹쳐서 덮었다. 무덤 구덩이는 보통 단을 만들지 않지만 말을 부장하는 구덩이의 북쪽에 단을 만들고 말을 넣어서 석관묘의 높이와 맞추었다. 무덤의 깊이는 120cm, 크기는 290×240×205cm이다. 이 무덤 상부의 돌을 덮은 범위는 (적석) 6m이다.

 

그림 1.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25호의 평면도

 

그림 2.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상부와 단면도

 

 

앞에서 유스티드 XII유적과 울란디르크 I유적에서도 돌널무덤이 있었으나, 무덤바닥에 나무를 깔고 여러 겹으로 덮는 것, 무덤구덩이에 단을 만드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미라의 머리 아래에는 돌침(돌베개)가 사용되었다.

 

알타이에서 발견된 유적은 지난 겨울~봄에 살펴본 아크 알라하-3유적, 바샤다르 유적 2호분, 파지릭 유적 2호, 5호 등이다. 2600~2500년 전 유적으로 기원전 6~5세기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25호 무덤에서 발견된 미라는 2600~2500년 전  미라 처리와는 상당히 차이가 있고 부장된 유물이나 무덤 등도  차이가 있다. 바르부르가지 I유적은 기원전 5세기 경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 만들어진 곳으로, 미라가 나온 25호는 기원전 4세기경의 무덤으로 생각된다(쿠바레프 1992).

  우코크 고원이나 파지릭 계곡에서 발견된 미라는 대단히 정교하게 만들어진 미라로 전신의 관절을 끊지 않았고, 그 내부를 풀과 동물의 털로 채워넣었다. 반면에 바르부르가지I유적의 25호 미라는 사실 흉내만 낸 미라이다. 머리, 팔, 다리만 미라가 되도록 했고 몸통은 거의 잘 남아 있지 않다.

알타이에서 스키타이 문화의 전성기인 2600~2500년 전 이후의 미라의 존재와 그 상태 등이 늘 궁금했는데,,약간은 해결된 듯 하다.

 

 통나무관에 어린아이를 묻는 장법이나 미라를 만드는 장법 등은 모두 어쩌면 ‘부활’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모른다. 2400년 전 작은 무덤에 묻힌 사람에게도 그런 것을 누군가의 염원을 담았을 수도 있다.

사실 이 지역에서 스키타이 문화 이전에는 미라를 대신해서 사람을 닮은 인형을 무덤 속에 묻어 두었다. 청동기시대(오쿠네보 문화), 순동시대(글라스코보 문화), 신석기시대(키토이문화, 세로보문화), 후기구석기시대에서 모두 발견된다. 물론 시대별로 생김새와 재질은 차이가 있다. 

 죽은 자와 함께 넣은 미니어쳐 혹은 미라는 살아 있는 사람의 염원이 담긴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를 그리며 넣은 ‘재생’, ‘부활’에 가까울 것 같다. 설마 노잣돈의 의미로 넣은 것은 아닐테니...바르부르가지 I유적에서도 우코크 고원이나 파지릭계곡의 유적과 같이 화려한 무덤은 아니지만 그런 의미를 담아서 무덤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2 : Курганы Сайлюгема. Новосибирск: 1992. 22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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