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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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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시베리아황금유물컬렉션'에 해당되는 글 31

  1. 2021.05.16 스키타이 남성 석인상의 손 모양
  2. 2021.05.15 스키타이 인의 표식-목걸이
  3. 2021.05.14 스키타이 남성의 목걸이
  4. 2021.05.13 황금 유물 속의 시베리아 전사 5인
  5. 2021.05.12 시베리아에서 수집된 표트르 1세의 황금나무

 

1712년 시베리아 총독 가가린이 보낸 표트르 1세의 수집품 가운데서 황금여성상은 보기드문존재이다. 소형 여성상이 주로 만들어지는 시기는 시베리아의 후기구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가운데 오쿠네보 문화이고 모두 골제로 제작되었다. 신석기시대에도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성을 드러내지 않는 특징이다. 하지만 이 여성상은 나신으로 여성성을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금으로 제작되었다.

 

스키타이 문화권의 흑해 북부, 크림반도, 코카서스 산맥 부근의 유적에서는 돌로 제작된 남성상들이 확인된다. 이 남성상은 기원전 7~3세기에 만들어졌는데, 시간에 따라서 손에 들고 있는 각배, 허리띠, 무기, 장신구(목걸이), 헬멧, 손모양 등에 따라서 연대가 구분된다. 간혹 여성상이 확인되기는 하지만 대부분 남성상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인 표트르1세의 황금여성상은 나신으로 착용하고 있는 것은 팔찌뿐이고, 머리에는 모자? 와 같은 것을 쓴 것이다. 그런데 이 여성의 손 모양은 왼손이 위, 오른손이 아래이며 나란히 가슴 바로 아래 전면의 정중앙에 두고 있다.

 

2021.05.1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시베리아황금유물컬렉션] - 황금 여성상은 어디서?

 

황금 여성상은 어디서?

18세기 시베리아 총독이었던 가가린은 1716년 12월 12일 표트르 1세에게 두 번째 소포를 보낸다. 그때 황제는 외국에 출장중이었고, 모스코프가 소포를 대신받았다. 이 사실은 표트르 1세와 함께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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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남성석인상도 흑해북안과 카프카스 산맥부근에서 이런 손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기원전 7~6세기의 유적(그림 1,2)에서 발견된 것이다. 기원전 5세기 유적 이후의 석인상은 각배(그림 3)를 들고 있다. 석인상의 손 모양은 손을 나란히 마주하고 있는 것, 마주하고 팔꿈치를 굽힌 것, 양손을 아래로 내려 놓은 것, 손 한쪽은 위+ 다른 손은 아래로 한 것 등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시간에 따라서 손모양에 차이가 있다.

이러한 특징을 황금 여성상에 대입한다면 이 유물은 표트르 1세의 수집품 가운데 몸을 말고 있는 맹수상과 같이 매우 이르다고 볼 수 있다.

 

그림 1.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석인 남성상(입상),기원전 7~6세기, 살라뱐카 유적

 

그림 2.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석인 남성상(좌상),기원전 7~6세기, 상단-비노그라도프카 유적

 

그림 3.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석인 석인상(입상), 기원전 5세기, 테레노프카 유적

 

하지만 이 여성상은 옷을 입고 있지 않다.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발견된 여성의 모습은 대부분 어떤 유물의 한 부분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예를 들면 거울) 옷을 입고 있다. 옷을 거의 벗거나 얇은 옷을 입혀서 신체를 드러낸 여성상은 그리스 신화의 인물로 추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기원전 5세기 이후의 유물에서 발견된다.

2020.11.0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체르토믈리크 유적] - 흑해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아킬레스

 

흑해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아킬레스

흑해 북안의 드네프르 강 유역의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유적인 체르톰리크 무덤은 매우 복잡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중심무덤방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방 옆에 또 다른 방 들이 만들어진 구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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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여성성을 드러낸 청동기시대 유물도 대부분 옷을 입은 것으로,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여성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흥미롭게도 머리카락 표현으로 여성성을 드러내고 있다. 후기구석기시대 이후로 나신으로 여성성을 드러내는 것은 매우 극히 드물다.

 

그림 4. 시베리아 청동기시대 오쿠네보 문화의 여성상(4~7), 남성상(8~10)

 

그래서 이 표트르 1세의 황금여성상은 손 모양은 스키타이 지역의 유물이지만, 나신이라는 점에서  불확실한 유물이다. 

 

참고문헌

Ольховский В.С., Евдокимов Г.Л. Скифские изваяния VII-III вв. до н.э. М., 1994(올호프스키, 에브도키모프 1994, 기원전 7~3세기 스키타이 석인상)

Завитухина Золотая статуэтка из Сибирской коллекции Петра I и некоторые вопросы истории коллекции.// СГЭ. [ Вып. ] XXXVIII. Л.: 1974. С. 41-44(자비투히나 1974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컬렉션 중에서 황금상에 대해서)

김재윤 2021, 「시베리아 청동기시대 오쿠네보 문화 골제 인간형상물에 대한 검토」, 『영남고고학』, 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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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 가운데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유물 중에 하나인 목걸이는 실제로 흑해 및 코카서스 부근의 스키타이 시대 무덤에서 발견된다. 특히 기원전 4세기 이후에 많은 양의 목걸이가 출토되는데, 금, 은, 동으로 제작되었다.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유적에서 발견되는 석인들도 목걸이를 착용하는 예가 많은데 기원전 5세기 이후로 생각되는 석인상들은 목걸이를 착용하는 예가 많아진다. 남성석인상(그림 1)이 대부분이지만 여성석인상(무기가 없음)도 이 시기에 발견되는데 3중으로 목을 감고 있는 목걸이를 착용했다(그림 2).

 

그림 1.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남성(81-올호프치크 출토, 83-마리우폴 출토), 남성이 걸고 있는 목걸이 처럼 꼬인 줄도 유적에서 실제로 발견된바 있다.

 

그림 2.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여성(프레그라드나야 석인상 1호)

 

기원전 4세기 이후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목걸이는 남성, 여성, 어린이 무덤에서 모두 발견된다. 스키타이 장신구를 연구한 페트렌코는 목걸이가 내포하는 위세가 초원 스텝지역과 산림 스텝 지역에서 차이가 있다고 분석했다. 초원지역에서는 크게 특권의식이 없는 무덤 부장품이지만 초원 북쪽의 타이가 스텝지역에서 발견되는 목걸이는 귀족의 재산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코롤코바는 위세품이라기 보다는 목걸이를 통해서 서로를 구분하는 인식표시로서 보았다. 그녀가 목걸이와 함께 팔찌를 일종의 인덱스처럼 여긴 것은 다양한 형태의 목걸이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목걸이의 회전 수, 목걸이의 종류(두꺼운 와이어, 안이 빈 튜브구조, 주조한 것, 구멍을 뚫은 것)와 동물장식 및 목걸이의 연결 방법이 다양한데 여러지역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목걸이 끝장식이 닫히고 나선형으로 회전된 토크(목걸이)가 가장 많이 발견되는 지역은 흑해북안인데, 대부분 기원전 4세기의 유적이다. 이 지역에서는 스키타이 문화가 시작되는 기원전 7세기 및 기원전 6세기에는 이러한 형태가 발견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유적이 체르토믈리크 유적이다(그림 3-1,2).

 

그림 3. 1-체르토믈리크, 북서쪽 무덤방, 기원전 4세기, 2-남서쪽 무덤방, 기원전 4세기, 3-크라스느이 페레콮, 22호 2번 무덤방 기원전 4세기, 4-차얀 무덤 목걸이 끝장식, 기원전 4세기 5-아판-사르차 유적 출토, 목걸이 끝장식 기원전 5세기, 6-목걸이 끝장식, 7-코발레프카 5유적, 2번 쿠르간 2번 무덤방, 기원전 4세기

 

목걸이 끝에 달린 동물은 맹수의 전신이며, 귀 모양이 약간 씩 다르다. 표트르 1세의 목걸이와 팔찌도 목걸이 자체의 모양도 차이가 있지만 달린 동물도 머리만 달리것, 전신이 달린 것(그림 4-3) 등 세부적인 차이가 있다.

 

그림 4. 표트르 1세의 수집품

 

목걸이가 내포하는 의미에 대해서는 코롤코바 및 페트렌코의 의견모두 살펴볼 필요가 있다. 코롤코바의 2001년 글에서는 목걸이와 팔찌만을 이야기 했지만 대부분의 학자가 인식하듯이 머리장식도 집단을 상징하는 표식일 수 있다. 축구의 유니폼처럼. 흑해지역에서 목걸이가 특권의식이 없다고 보는 것은 시간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기원전 5세기 이후)에서 많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시베리아 투바의 아르잔-2호에서는 다른 장신구는 주인공 무덤이나 그 외의 무덤이나 비슷한 재질로 만들어지지만 유독 목걸이와 머리장식 만은 주인공의 것이 눈에 띄도록 제작되었다.

 

참고문헌

Петренко В.Г. Украшения Скифии VII-III вв. до н.э. М., 1978 // САИ. Вып. Д.4-5. С. 41.(페트렌코 1978, 기원전 7-3세기 스키타이의 장신구

Ольховский В.С., Евдокимов Г.Л. Скифские изваяния VII-III вв. до н.э. М., 1994(올호프스키, 에브도키모프 1994, 기우너전 7~3세기 스키타이 석인상)

Королькова Звериный стиль в оформлении гривен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й эпохи.// Ювелирное искусство и материальная культур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1. С. 68-95. (코롤코바 2001, 스키토-시베리아의 목걸이의 형성과 동물장식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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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 가운데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은 목걸이와 팔찌이다.

흑해지역의 기원전 4세기 유적 이후에서는 매우 많이 출토되고, 스키타이 문화 이후의 사르마트 시대에도 많이 출토된다.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컬렉션 가운데 목걸이를 코롤로바는 크게 3가지로 구분했다. 양 끝이 약간 열려 있으면서 동물장식이 붙은 것(그림 2), 후프가 나선형으로 돌아가도록 세팅 된 것(후프가 2~3번 감긴 것)(그림 5-2~4), 나선형(그림1)으로 꼬인 것이다.

 

그림1.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 나선형

 

그림2.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 양 끝이 열려 있으면서 동물장식이 붙은 것

 

그러나 이 분류법에서는 여러 층을 쌓아서 올린 목걸이 안이 빈 후프는 분류법에 빠져 있는데, 이 유물은 위에서 말한 유물과 제작방법이 전혀 다르다. 코롤로바가 분류한 목걸이의 후프는 금 테를 꼬아서 만든 것으로 내부가 꽉 찬 것이지만, 여러 층을 쌓아서 올린 목걸이의 후프는 속이 빈 형태로 구분되어야 한다.

 

이 유물들은 시베리아 황금 유물의 연대, 제작지 등을 알 수 있게 하는 단서가 되는 유물 중에 하나이다.

 

흑해 북안과 코카서스 북부 지역에서 발견되는 기원전 7~6세기 전사의 석인상들은 대부분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는데, 앞이 열리도록 디자인된 목걸이, 완전히 막힌 목걸이 등 다양한 형식의 목걸이를 착용한 것이 발견되어서 이미 흑해 북안과 코카서스 북부의 스키타이 인들은 목걸이를 착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동물장식이 끝에 달린 목걸이다. 기원전 7~6세기 유럽의 스키타이 영토에서는 이러한 디자인의 목걸이와 팔찌 모두 확인되지 않는다.

 

1960년대에는 목걸이는 아니지만 중앙아시아의 아무다리야 퇴장유적의 유물로 알려진 팔찌가 아케메니드 궁전벽화에서 그대로 발견되면서 표트르 1세의 유물 중에 동물장식이 끝에 달린 목걸이도 비슷하게만 여겨졌고, 기원전 5~4세기로 보았다.

 

자료가 늘어가면서 동물 끝장식이 달린 목걸이가 출토되는 지역은 점 점 늘어났는데 우랄 남부지역, 흑해지역, 알타이, 카자흐스탄의 동부산악지역 등이다.

흑해를 제외하고는 18세기 당시에는 모두 시베리아로 지칭되었던 지역이다. 자료가 늘어가면서 표트르 1세의 유물은 점차 오리무중이 된다고도 할 수 있다.ㅋ

비슷하게 보이지만 동물의 표현도 다르고, 지역마다 제작한 소재도 차이가 있다.

 

그림 3. 우랄 남부, 스타로폴 퇴장지 출토품

 

그림 4. 알타이의 우코크 고원, 추야 강 계곡 유적에서 나온 목걸이 끝장식

 

그림 5. 카자흐스탄 이식(1) 유적, 2~5, 표트르 1세의 유물, 6-알타이 바르부르가지 I유적 26호 출토품

 

그림 6. 흑해지역에서 나온 목걸이 끝장식

 

 

스키타이 시대로 한정하지 않고 남성전사가 장신구를 착용하는 예는 좀 더 올라갈 수 있는데 시베리아 청동기시대인 안드로노보문화에서부터 청동으로 만든 장신구가 대량으로 출토된다. 흑해의 청동기문화인 코반 문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참고문헌

Петренко В.Г. Украшения Скифии VII-III вв. до н.э. М., 1978 // САИ. Вып. Д.4-5. С. 41.(페트렌코 1978, 기원전 7-3세기 스키타이의 장신구

Ольховский В.С., Евдокимов Г.Л. Скифские изваяния VII-III вв. до н.э. М., 1994(올호프스키, 에브도키모프 1994, 기우너전 7~3세기 스키타이 석인상)

Королькова Звериный стиль в оформлении гривен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й эпохи.

// Ювелирное искусство и материальная культур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1. С. 68-95. (코롤코바 2001, 스키토-시베리아의 목걸이의 형성과 동물장식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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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초반 시베리아 총독이었던 가가린이 수집해서 1712년에 표트르 1세에게 보낸 유물가운데 사람의 형상이 표현된 유물은 2점이다. 높이 1.5cm가량의 여성상과 직경이 3.8cm정도 되는사각통 금판위에 그려진 전사 5인이다(그림 1, 그림 2).

 

그림 1.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중에서 전사 5인이 그려진 황금원통

 

그림 2. 18: 전사 5인이 그려진 황금 통 그림1의 동일유물

 

여기에 표현된 전사 5인은 전쟁에서 막 이기고 돌아오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가장 앞의 말탄 기수 옆에는 말 안장 위에 전사의 시체를 던져 머리를 숙이고 있고, 그 뒤를 이어 나란히 뒤따르는 세 마리 말 중에 한 마리에도 역시 시체가 매어진 상태이다. 세 마리 말 중에 한 사람은 한 손에 검을 들고 생포한 장수(리더?)의 등을 겨누고 있으며, 그 뒤에 두 마리 말위에 탄 궁수는 생포한 전사를 향해 시위를 당기고 있다. 말을 탄 전사들은 헬멧을 쓰고 있는데 파지리크 유적 3호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하다. 파지리크 3호 유적은 파지리크 5호, 2호, 1호(기원전 5세기)에 비해서 늦은 시기로 기원전 3세기 경에 해당한다. 코롤코바는 기원전 4~2세기 유물로 보았다. 기원전 2세기는 이미 스키타이시대는 아니다. 루덴코나 코롤코바 모두 기원전 5세기 보다 늦은 기원전 4~2세기

유물로 보았다. 

 

스키타이의 유물 가운데 금제품 위에 문양을 그릴 때 제작하는 방법은 chasing, punching, repousse이 있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특히 체이싱기법은 볼록하게 튀어나온면 바로 옆에 음각을 해서 튀어나온 부분이 더 뚜렷하도록 보이는 기법이다.

표트르 1세의 유물에서도 체이싱 기법이 그대로 보인다(그림 3).

 

하지만 스키타이시대 이후에도 유물에 표현된 주제나 제작기법 등은 계속 사용되기 때문에 유구가 정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절대적인 연대를 알기는 힘들다. 단지 이 유물은 시베리아 출토 유물이라는 것이 확실하며, 기원전 5세기 이후의 어느 시점에 제작된 유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웅담이 유물에 표현되는 것은 스키타이 문화에서 흔히 선호된 주제이다. 

 

그림 3. 그림1-1의 세부

 

2020.12.10 -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 스키타이 핸드메이드 제작기술: 두드리고, 깍고, 잘라내기

 

 

스키타이 핸드메이드 제작기술: 두드리고, 깍고, 잘라내기

아무다리야 퇴장지 유물 가운데 스키타이 스타일과 제작기술로 만들어진 유물은 8점으로 파악된다. 광학현미경과 주사전사 현미경을 사용해서 분석한 결과이다(Scythians 2017). www.google.com/maps/d/e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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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5 -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 스키타이 도깨비와 사자

 

스키타이 도깨비와 사자

아무다리야 퇴장유적에서 발견된 유물 가운데 스키타이 금제품 제작기법으로 만들어진 유물은 8점이다. 그 가운데 제작기법은 스키타이 기법이지만 문양은 전통적인 문양이 아닌 유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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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Е.Ф. Королькова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и золото древних кочевников Евразии. //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СПб: «Славия». 2012. С. 83-88(코롤코바 유라시아 유목민의 황금 유물 중에서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컬렉션)

Руденко С.И. 1962 :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 САИ Д3-9. М.-Л.: 1962.(루덴코 1962, 표트르 1세 시베리아 콜렉션)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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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중에는 매우 특이한 유물이 있다. 1716년 시베리아 총독이 보낸 유물목록을 다시 정리한 자비투히나(1977)의 글에서만 스케치 비슷한 유물이 있고 그 뒤로는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다. 자비투히나, 코랄코바 등이 표트르 1세의 유물을 정리했지만다른 유물에 비해서 관심이 적다.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중에서 가장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것은 버클 장식이다(그림1). 보통 쌍으로 존재하는데, 동물투쟁문양이다. 이 문양은 스키타이시대부터 흉노, 훈-사르마트 시기까지도 이어지는 대단히 지속력이 강하다. 이곳에는 늘 등장하는 것은 동물외에도 그 배경이 되는 나무 혹은 나뭇잎이다. 특히 사람이 등장하는(그림 1-1,2)는 나무가 배경이 된다. 그림 1-1은 여성이 쓰고 있는 유물이 파지리크 유적의 2호에서 출토된 유물과 비슷해서 기원전 5세기대의 유물로 생각된다. 그림 1-2는 그림 1-1보다는 늦다고 보는 의견과 비슷한 시점이라고 보기도 한다. 등장하는 인물 보다는 배경이 된 나무의 표현이 훈-사르마트시대(그림 1-4, 2-46~49)(사르마트문화 중 늦은시기, 사르마트: 볼가~돈강 유역에 걸친 스키타이 문화권내의 지역문화)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 1. 표트르 1세의 황금 유물 중에서 허리띠 버클장식

 

그런데 가가린이 1716년에 보낸 유물가운데 ‘유니크’ 혹은 독특하다는 표현말고는 다른 말로 설명이 안되는 유물이 있는데 황금나무이다(그림 2-50). 가가린의 유물목록에서 50번이고 무게는 12 황금근(золотник, zolotnik, 러시아제국시절 황금의 단위, 1졸로트닉=4.26g)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를 환산하면 51.12g이다. 현대에 새로 측정한 바에 따르면 53.1g이다.

 

그림 2. 표트르 1세의 황금 유물 중에서 1716년 가가린 목록 50번이 황금나무 

 

필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림 1에 나오는 나무와 그림 2의 나무는 전혀 다른 나무이다. 그림2의 나무는 나무의 가장 높은 곳에 잎이 붙는 형태인데, 주로 종려나무라고 불리는 종이 대부분 잎이 끝에만 붙는다. 그러나 종려나무의 잎(한 가지에 가는 잎이 가지런하게 붙어 있음)과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이 나무도 변형된 모습처럼 생각된다. 그렇다면 황금나무는 벨트에 표현된 나무와 전혀 다른 나무이기 때문에 출토지점도 완전히 다를까?

모두 같은 소포 속에서 나와서 다른 유물과 출토위치가 다르더라고 해도 그 인근이지, 아프리카 유물을 보냈을리는 만무하다. 황금나무를 만든 사람은 어디서 이런 나무를 보았을까? 표트르 1세의 황금 유물은 너무 유명해서 인터넷에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 황금나무는 사진조차 찾을 수 없고, 이 나무에 대해서 쓴 사람도 없다. 물론 손잡이가 양쪽으로 달린 황금 그릇(그림 2-45)처럼 페르시아계통의 유물일 수 있지만 반드시 그 곳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황금그릇은 어떻게 보면 매우 흔한 유물처럼 보인다. 흑해지역의 기원전 5세기 이후 유적, 볼가강의 필리포프카 유적 등에서 툭하면 나오는 유물이다.

 

더보기

황금나무의 잎을 다는 기술은 나무가지 끝에 고리를 매개로 잎을 단 것인데, 나뭇잎이 흔들릴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주로 관(冠)에서 많이 사용되는 방법인데, 오랫동안 북방민족들이 관을 만들때 사용한 방법 중에 하나이다.

 

 

참고문헌

Е.Ф. Королькова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 первое российское археологическое собрание. // Основателю Петербурга: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в Эрмитаже]. СПб: «Славия». 2003. С. 190-199.(코롤코바 2003,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러시아의 최초고고학유물)

М.П. Завитухина Собрание М.П. Гагарина 1716 г. в Сибирской коллекции Петра I. // АСГЭ. Вып. 18. Л.: 1977. С. 41-51 (자비투히나 1977, 1716년 가가린이 수집한 표트르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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