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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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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역주본'에 해당되는 글 2

  1. 2019.07.22 한국사의 영역, 문화권 그리고 환단고기
  2. 2019.06.19 홍산문화의 우하량유적 국가고고유지공원

필자는 여간해서는 낮에 자지 않는다.

대부분 그렇겠지만, 거의 혼자 있는 이 공간에서도 필자는 내 나름의 규칙이 있다.

재미없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머 그냥 그렇게 생겨먹었을 뿐이다.

 

지난주월요일에 답사,,,해외출장을 다녀오고 밤비행기타고 아침에 왔는데, (뱅기타는날은 천산산맥 중에 한 곳으로 해발 3000m 올라갔다왔다.)

부산오자마자 점심먹고 샤워하고 학교갔다. 줄줄이 소세지 같은 원고촉박타령때문에

그 뒤 거의 이틀을 꼬박 12시까지 일하고 나서...

그 뒤 부터는 체력이 못버티는지 토요일밤에는 10시간을 자고, 어제는 낮잠도 잤다.

 

며칠간 일본불매운동이 아주 들불처럼 번지고 있었지만,

난 댓글하나 달 시간도 없었다.

나도 고고학자이고, 고고학자가 역사학자이니,,한 마디 해야하긴 하는데...하며

소심하게 인스타에 표식을 걸었다.

 

항일감정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데,

그건 아마 오래동안 잠재된 일본에 대한 항일감정 때문일 것이다.

역사문제이다.

 

 

역사는 모든 사람의 것이기에 누구나 이야기 할 수 있다.

나의 하루하루가, 너의 하루하루가 모여서 역사가 되는게 아닌가.

나는 진짜 한반도의 울타리를 찾고 싶다.

중국의 민족주의 논리에 따른 환단고기역주본 같은 그런 거 말고.

 

나는 환단고기 원본에 대해서 한번도 언급한적 없다.

왜냐하면 환단고기의 실체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환단고기(한문본)는 불행하게도 일본에서 처음으로 출판된 것이다.아다시피.

그 부분부터 섞연치 않다. 이유립, 1979년, 광오해이사,

그리고 가지모노보루라는 일인이 일본어로 역주했고 화제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한국어로 역주된 환단고기는 1985년 김은수가 처음으로 역주했고, 1986년 임승국의 역주본은 크게 유행했다. 그러나 임승국은 가지마노보루가 일역한 것을 한국어로 번역했다고 한다.

어쩌면 환단고기는 우리에게 아직 전해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문화범위가 지금 국경과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각종 유적에서 나오는 유물은 한반도의 유적과 같은 성격의 것이 많기 때문이다.

국경은 생겨난지 얼마 되지 않는다. 선사시대 문화권이 지금의 국경과 다른 것은 환단고기를 거명하지 않더라도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선사시대문화권은 국경을 넘어선 ‘문화권’을 파악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의 초점은 토기이다. 고고학에서 문화권을 설정하는 것은 비슷한 생활권을 구분하는 일인데, 그 생활의 가장 밑바탕에는 토기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북한에서도 한국에서도 러시아에서도 일본에서도 문화권의 구분은 토기의 구분에서부터 시작된다.

 

필자가 생각하는 한국고고학에서 기원 혹은 기원지 찾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역에 대한 별다른 고민없이 현대의 국경을 기본인식으 해서, 기원지로 여겨지는 지역을 외부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문화단위별로 연구되지 않는 한국고고학의 특성상 양 지역에 보이는 어떤 특정문화요소만을 비교하게 되면 맹목적인 기원지 찾기의 단순성이 야기된다.

그래서 필자는 원류나 계보 문제를 다루기 이전에 최소한 현재의 행정구역을 벗어난 선사인의 생활권역으로서 문화권의 구분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김재윤 2017, 11페이지)

 

김재윤 2017, 『접경의 아이덴티티: 동해와 신석기문화』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앞서 중국의 최근 박물관에 대해서 간략하게 포스팅을 했다.

 

장춘에서 길림대학교박물관을 한 곳 더 보았으니,

총 7개의 박물관을 보고, 그 중에서 3곳은 유적위에 세워진 박물관으로 유적과 유물전시관이 세트가 된 곳이다.

 

우하량국가고고유지공원은 중국의 고속철 역이 드러설 정도로 정성?을 들인곳이다.

심양에서 출발해서 우하량까지 대략 2시간 정도 걸린다.

그림 1. 우하량역
우하량유적의 위치
우하량역에서 국가고고유지까지

 

 

우하량 역에서 우하량 유적의 국가고고유지공원까지는 대략 30km 떨어진 곳이다.

이곳은 박물관이라기 보다는 유적 전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4개의 전시관을 만든 공원이다. 전시관과 전시관은  차를 타고 이동해야만 한다. 전시관 사이에는 화단도 가꾸어져 있다.

 

필자가 갔을 때는 9시 반 정도였는데, 아무도 없었다. 그런 곳에 그렇게 꾸며 놓았다.

홍산문화를 얼마나 철저하게 국가차원에서 다루고 있는지를 느끼게 한 공간이다.

예전 포스팅에서 왜 여신묘가 여신묘가 되었는지를 비판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나온 인물이 소병기이다. 이곳의 1관은 그를 철저하게 우상화하고 있었다.

1관의 입구, 소병기 동상

 

 

 

2관은 유물전시관이다. 아쉽게도 이곳은 아직 유물로 채워지지 않은 빈 전시장도 있었지만, 옥기, 중요토기들은 대부분 복제품이 많았고,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토기와 석기만 전시되어 있었다. 우하량에서 C자형 동물모양 옥기가 3점이 출토되었는데, 복제품 1점이 있었고, 1지점에서 출토된 여신상의 마스크 토제품도 복제된 것이었다.

2관입구

심양에 있는 요녕성박물관에 우하량 출토 C자형 동물모양옥기가 1점 있었고, 그곳에도 여신상마스크는 복제품이었다. 아마도 베이징 국가박물관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3관은 우하량 1지점인 여신묘라고 추정되는 건축물의 상부를 덮어서 대략적인 모양을 표시해놓았다. 그곳은 발굴된 적이 없고, 토제마스크와 가슴으로 추정되는 토제품, 동물모양의 토제품 등이 몇몇 출토되었을 뿐이다.

 

3관 내부, 여신묘의 표시

 

3관 내부에 전시된 유물은 모두 복제품이다. 3관 자체가 여신묘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지만, 정식발굴은 이뤄지지 않았다. 문제가 많은 곳이다.

 

4관은 우하량2지점의 무덤을 발굴해서 노출한 채로 그대로 살려두고, 전시하는 유적전시관이다. 아이들을 위한 교육장과 같은 성격이 강한듯 했다 여기저기 애들을 위한 패널이 보인다. 

 

4관 내부

 

필자가 부러워하는 부분은 이런 전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적을 살려서 전시하는 경우가 드물다. 물론 문화재연구소와 같은 국가차원에서 하는 발굴은 보존하려고 애는 쓰지만, 대부분 도로나 아파트 공사를 위한 곳에서 이뤄진 발굴은 그런 사치?는 우리에게는 거의 없다.

 

우하량유적은 중국국가차원에서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홍산문화를 문명화 한다든지, 중국동북지방의 역사를 선사시대부터 철저하게 자신의 역사로 관리하는 모습은 씁쓸하고도 우리나라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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