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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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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1.17 기원전 5세기 흑해 지역의 복고문화
2021. 1. 17. 12:49 스키타이 동물장식

 

흑해의 스키타이 동물장식에서 이웃한 지역 가운데 그리스의 특징이 뚜렷하게 보이는 것은 기원전 5세기 이다. 그럼 이러한 현상은 그리스 문화가 스키타이 문화 속으로 침투?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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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스키타이 문화의 그리스설은 파르마콥스키가 처음 제기했고, 이는 기원전 7세기 유물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흑해지역에서 기원전 7세기와 기원전 5세기에는 그리스와 스키타이 문화가 어떤 양상이든지 매우 밀접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주체가 누구인가가 문제이다. 

 이때 흑해 북안의 올리비아라는 도시가 생겨났고, 케르치 해협에는 보스퍼러스 왕국도 있었다. 올리비아는 그리스 식민도시로 알려졌고 보스퍼러스 왕국은 여러 설이 있지만, 어찌 되었던 그리스의 영향력이 있는 국가라고 알려졌다. 올리비아에는 그리스인이 물건을 제작하는 공방이 있었고, 그 뒤에 보스퍼르스 왕국의 수도인 파니키움에서 올리비아의 역할을 물려 받았다고 알려졌다.

 

2020/08/1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여신] - 흑해 스키타이 신화의 여신을 배경으로 한 유물

 

흑해 스키타이 신화의 여신을 배경으로 한 유물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침발카유적에서 출토된 마면장식에 여신이 표현되어 있다. 양손에 그리핀 머리를 움켜잡고 있는데, 몸통은 뱀의 형상이다. 유물은 그리스에서 제작되었으나, 스키타이 인

eastsearoad.tistory.com

기원전 5세기 흑해북안의 도시인 올리비아 혹은 케르치 해협의 보스퍼러스 국의 공방에서 제작된 유물로 생각되는 유물이 슈메이코 유적(그림 1-1)과 토마코프스키 고분(그림 1-2)에서 출토되었다. 나온 유물 가운데 검집 장식에 두 마리 맹수가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것이 발견된다. 발끝에는 발톱이 있고, 콧 구멍과 입은 서로 연결되어 타원형처럼 보이고, 주둥이는 길며, 꼬리 끝은 새의 머리모양이다.

두 사자가 머리를 맞대고 있는 장면은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의 투부 끝, 은제 거울의 사자 2마리 등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림 1.기원전 5세기 유물의 검 손잡이에 나타난 맹수(1-슈메이코 유적, 2-토마코프스키 유적)

 

올리비아에서 발견된 십자형 장식판의 중앙 원에는 몸을 말고 있는 동물장식이 있고 끝에는 세 마리 독수리 머리가 부착되었다. 두 동물장식은 어딘가 익숙한 모습인데, 기원전 7세기의 유물에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중앙 원의 몸을 말고 있는 맹수 장식은 원형과는 다르다. 독수리 머리는 간두령의 장식으로 표현된 적이 있다. 비슷하게 생긴 청동판이 오피실랸카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네모꼴 막대 부분에는 다리를 내린 맹수 4마리가 수직으로 그려져 있고, 원 안에는 몸을 말고 있는 맹수와 초식동물이 함께 그려져 있다.

가브릴로프카 유적에서 출토된 거울 손잡이에는 맹수장식이 연속으로 표현되었고 끝에는 초본류가 표현되었다. 팔메트 문양이라고 불리는 이 장식은 그리스의 유물에서 자주 목격된다.

 

그림 2. 기원전 5세기 초의 그리스 제작기술로 만들어진 청동 유물 1-오피쉬랸카 유적, 2-순투크 고분 출토, 3-가블릴로프카 유적 출토, 4-바소프카 유적의 482호 무덤, 5-올리비아의 청동장식판

 

위에서 보여드린 유물은 기원전 5세기 유물로 그리스 장인이 200~300년 전 스키타이 유물의 모티브를 리뉴얼 한 것이다. 스키타이인들을 대상으로 제작한 것이기 때문에 스키타이 모티브를 다시 가져와서 제작했으나 원래와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원전 5세기 말 그리스 공방에서 제작된 유물에는 동물의 몸통의 스키타이 특징은 사라지고 그림 구성 및 자세만 약간씩 변형되어 결합되었다. 그래서 이 시기의 그리스 장인들의 목적은 동물의 이미지를 재현한다기 보다는 보이기 위한 디자인과 이를 활용해서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장식적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리스 장인이 초기 스키타이 유물에서 모티브를 채용해서 다시 재작업한 기간은 기원전 5세기 초부터 5세기 중반까지 그리 길지 않았다(일린스카야 1971).

스키타이 문화가 대체적으로 기원전 9세기부터 시작되어 대부분의 지역으로 확산된 것은 기원전 7세기이고, 이 문화가 사라지는 것은 기원전 4~3세기로, 각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그 안에서도 복고풍?이라는 것이 생겨난 것 같다. 그럼 그리스 장인들은 왜 스키타이 인들의 모티브를 재사용해서 여러 물건을 만들었을까?

일린스카야(1971)는 ‘스키타이에게 판매할 목적으로 그리스 장인이 만들었다’는 표현을 썼다. 즉 수요자가 스키타이 인이었기 때문이다.

유물에 남아 있는 그리스적인 요소는 그리스 인들이 유물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들의 요소도 남겨지게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스키타이 유물에 그리스 요소가 가미되었다고 해서 이를 그리스 문화의 대단함?으로만 연결시킨다면 너무 단세포적인 생각이다.

 

 

참고문헌

Ильинская В. А. 1971, Образ кошачьего хищника в раннескифском искусстве.—€А . 1971, No 2. (일린스카야 1971, 초기 스키타이문화의 맹수장식)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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