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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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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의 추야 강의 한 지류인 바르부르가지 강에는 28기의 스키타이 무덤이 발견되었다. 쿠바레프는 무덤의 배치로 유적에는 5그룹이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아래 표). 그러나 필자는 쿠바레프가 나눈 3그룹 가운데서 14호 아이는 기존의 3그룹에 속한 12호 무덤의 아이와 달리 부장유물이 많아서 3그룹과 구분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14호는 3그룹의 다른 무덤과 달리 연대도 늦은 편이었다. 1그룹과 2그룹에서 아이 무덤이 먼저 배치되고 그 뒤로 남성과 여성 무덤이 배치되는 점으로 보아서 14호 무덤이 15호, 16호와 그룹이 된다면 좀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유적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그룹은 기원전 5세기 무덤이 속한 1그룹, 3그룹, 5그룹이다. 그 외 기원전 4~3세기 무덤이 속한 4그룹과 새로운 그룹은 그 이후에 만들어진 무덤이다.

  그런데 2그룹에는 두향이 바뀐 8호 무덤이 있다. 6호 무덤은 좀 석연치 않다. 쿠바레프의 텍스트 중에는 남향으로 되어 있으나, 도면에는 동향이기 때문이다. 2그룹 가운데 6호는 제외하더라도 유적에서 모든 무덤이 동향인데, 두향을 바꾼 경우는 이 들의 전통과는 다른 무덤으로 볼 수 있다. 어쩌면 기원전 4세기대에 만들어진 4그룹, 새로운 그룹 보다 더 늦게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쿠바레프는 또 이 유적에는 이른바 ‘노예’무덤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16호 무덤(그림 아래포스팅 참고)과 같이 아무런 유물 없이 사람만 묻은 경우이다. 아마 이것 말고는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는 무덤은 설명이 되지 않았을꺼라고 생각한다. 같은 그룹에서 특히 어린아이의 무덤(14호)에 조차 그릇과 몇 점의 유물은 넣어두는데 아무것도 없는 무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린아이의 무덤 조차’라는 필자의 생각은 잘 못 되었을 수 있다. 가장 귀중한 존재였을 수 있으니깐.

  뒤 쪽에 위치한 성인의 무덤은 독신자 운운 했는데, 그게 아니라 자연사 일수 있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성인보다는 더 약한 존재여서 죽을 가능성이 크다. 어린아이 무덤만 만들어지지 않고, 성인과 같이 그룹을 이루고 있다는 점은 이상할 수 밖에 없다. 어른이 죽어서 어른아이가 죽은 것인지 어린아이가 죽어서 어른도 죽은 것인지 알 수 없다.

   필자가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현재 살펴본 유적(추야강의 유적)에서 대부분 어른과 함께 그룹이 되어 확인되기 때문이다.

 

 

 한편, 어린아이의 무덤에 유물이 부장되지 못하는 1호와 12호는 이 유적 전체가 유물이 매우 빈약하다는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즉 이 유적 자체가 앞서 살펴본 유스티드 XII유적과는 재산의 정도가 달랐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유적 안에서 어른과 아이가 그룹이 만들어지는 현상에 대한 관점에서 어린아이의 위치에 대한 생각을 해 본 것이다. 이 현상이 여러 유적(유물이 많거나 적거나 상관없이)에서 관찰되는 점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림 1.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6호

 

그림 2.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7호

 

그림 3.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8호

 

2020/11/0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바르부르가지 강의 유적] - 알타이 어느 스키타이 아이의 부모는?

 

 

무덤호수

성별

필자

쿠바레프

무덤시설

크기

말 매장

상부직경(m)

시설(cm)

첫 번째열

 

1

아이

1그룹

1그룹

통나무관

6

200×50

0

 

5세기

2

나무무덤방

9.6

240×150

1

 

 

3

나무무덤방

8

 

2

 

 

4

석관묘

5.6

150×110

0

 

 

5

나무무덤방

2.7×3.1

160×110

0

 

 

6

아이(동향? 남향?

2그룹

2그룹

나무무덤방

3×4.4

160×100

0

 

 

7

남녀

나무무덤방

8.3×9

180×110

2

 

 

8

여성(서향)

나무무덤방

6.7×7.6

180×110

0

 

 

9

여성

3그룹

3그룹

석관묘

7

140×80

0

 

 

10

여성

나무무덤방

7

160×100

1

 

 

11

남성

나무무덤방

5-6

230×140

0

 

 

12

아이

석관묘

7

160×110

0

 

5세기

13

남성

나무무덤방

7

240×150

1

 

4~3세기

14

아이

새로운 그룹

석관묘

5

120×100

0

 

 

15

남성여성남성

 

나무무덤방

4-6

140×100

1

 

 

16

여성

석관묘

5

130×80

0

 

4~3세기

17

여성

4그룹

4그룹

석관묘

6

160×80

0

 

4~3세기

18

남성

석관묘

5-6

150×90

0

두번째열

4~3세기

21

남성

석관묘

5.7

145×80

0

 

 

22

남성,여성

나무무덤방

6

180×120

2

 

4~3세기

23

남성

석관묘

6

180×110

2

 

 

24

무덤없음

무덤없음

5

없음

 

 

4~3세기

25

남성

석관묘

6

 

1

 

5세기

26

남성

5그룹

5그룹

나무무덤방

9.5

180×120

2

 

 

27

여성

나무무덤방

7.2

170×110

0

 

 

28

여성

나무무덤방

8

200×110

0

 

 

29

여성

나무무덤방

7.2

180×110

2

 

 

30

남성

나무무덤방

10

180×120

1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2 : Курганы Сайлюгема. Новосибирск: 1992. 22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 스키타이 문화인 파지릭 문화 중에서 말라투 IV유적에서는 목제로 된 동물문양장식을 단 모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동물문양장식이 있기는 했지만 소략하고 금판으로 된 것만 남아 있었다. 추야강 계곡의 유적인 유스티드 XII유적, 울란디르크 강 유적의 유적에서 동물문양 장식은 주로 모자 장식과 이 보다는 빈도수가 낮게 발견되는 동물문양장식은 목걸이 끝 장식으로 사용되었다. 주로 표범, 늑대, 그리핀 등이 있다. 주로 맹수이다.

 

그런데 바르부르가지 I유적에는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산양장식(그림 2-7,8)을 단 목걸이가 발견되었다. 18호 석관묘에서 발견되었다. 이 남성은 모자에도 동물문양장식을 달았다(그림 2-4,6,7). 산양몸통에 사슴머리를 한 장식(그림 2-4), 말 장식(그림 2-6.7)이다.

 

 

그림 1.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18호 유물

 

그림 2.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18호 유물

 

 

이 남성이 속한 그룹은 17호, 18호, 21호, 22호, 23호, 24호이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앞선 포스팅 참고(1028). 이 그룹에서 동물문양장식이 있는 무덤은 17호와 22호이다. 그 중에서 목걸이 장식이 있는 것은 17호의 여성으로 표범장식(그림 3-5,6)이다. 이 여성은 모자의 앞이마 부분에 달았던 산양몸통의 사슴머리 장식을 한 동물장식도 발견되었다(그림 3-3). 22호에는 남녀가 함께 합장되었는데 그 가운데 동물장식이 달린 머리에 모자를 쓴 이가 남성이다.(그림 4-3,4,5)

 

 

 

알타이 스키타이 어느 가족의 공동묘지

알타이 바르부르가지 I유적에서는 스키타이 시대 무덤 28기가 확인된다. 한 계곡에 함께 매장되었으니 한 친족 집단이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그룹이 있다. 쿠바레프는 남북방향으로 서 있는 무덤

eastsearoad.tistory.com

 

그림 3.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17호 유물

 

그림 4.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22호 유물

 

18호에서 발견된 산양장식이 달린 목걸이는 알타이에서는 최초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쿠바레프는 ‘알타이형 목걸이’라고 불렀다. 17호의 표범모양 목걸이는 유스티드 계곡에서도 발견되었다. 모자의 동물문양장식은 유스티드 계곡, 울란디르크 계곡이나 거의 비슷했다.(좀 더 자세히 분석할 필요 있음). 목걸이의 동물문양장식은 약간씩 다르다. 문득 떠오른 생각. 바르부르가지 I유적에서 그룹으로 묶인(표 참고) 이 가족의 상징과도 같은 것일까? 알 수 없다.

 

 

(22호는 남녀 무덤임. 표에 고쳐두었음)

 

 

무덤호수

성별

그룹

무덤시설

크기

말 매장

상부직경(m)

시설(cm)

첫 번째열

 

1

아이

1그룹

통나무관

 

0

 

5세기

2

나무무덤방

 

1

 

 

3

나무무덤방

 

2

 

 

4

석관묘

 

0

 

 

5

나무무덤방

 

0

 

 

6

아이(남향

2그룹

나무무덤방

 

0

 

 

7

남녀

나무무덤방

 

2

 

 

8

여성(서향)

나무무덤방

 

0

 

 

9

여성

3그룹

석관묘

7

140×80

0

 

 

10

여성

나무무덤방

7

160×100

1

 

 

11

남성

나무무덤방

5-6

230×140

0

 

 

12

아이

석관묘

7

160×110

0

 

5세기

13

남성

나무무덤방

7

240×150

1

 

4~3세기

14

아이

석관묘

5

120×100

0

 

 

15

남성여성남성

 

나무무덤방

 

1

 

 

16

여성

 

석관묘

 

0

 

4~3세기

17

여성

4그룹

석관묘

 

0

 

4~3세기

18

남성

석관묘

 

0

 

투르크시대

19

 

투르크

 

 

 

20

 

투르크

 

 

두번째열

4~3세기

21

남성

석관묘

 

0

 

 

22

남성,여성

나무무덤방

 

2

 

4~3세기

23

남성

석관묘

 

2

 

 

24

무덤없음

무덤없음

 

 

 

4~3세기

25

남성

석관묘

 

1

 

5세기

26

남성

5그룹

나무무덤방

 

2

 

 

27

여성

나무무덤방

 

0

 

 

28

여성

나무무덤방

 

0

 

 

29

여성

나무무덤방

 

2

 

 

30

남성

나무무덤방

 

1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2 : Курганы Сайлюгема. Новосибирск: 1992. 22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의 어느 스키타이 가족의 공동묘지인 바르부르가지 I 유적에는 최소 5그룹의 가족이 묻혔다. 1~5호(1그룹), 6~8호(2그룹), 9~14호(3그룹), 17, 18호, 21~25호(4그룹), 26~30호(5그룹)이다. 남성을 중심으로 앞뒤로 여성과 아이가 배치되는 현상이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첫 번째 열에서 확인된다. 2번째 열에는 비슷한 유물이 출토되는 유적을 묶어서 4그룹과 5그룹으로 나눈 것이다.

 

이 중에서 3그룹은 11호 남성과 13호 남성을 중심으로 아이와 여성을 기준으로 구분했다. 이 그룹의 처음 무덤인 9호 무덤은 8호 무덤과 구분한 이유는 8호의 인골 두향 때문인데, 서향이다.

 

3그룹에는 말이 2마리 있었으며 각각 여성과 남성과 함께 매장되었고 무덤의 시설물은 나무로 된 무덤방이다. 유적전체에서 비율로 보아서 석관묘에 묻힌 경우는 2곳을 제외하고는 말이 부장되지 않았다. 이 그룹에서도 석관묘에 묻힌 경우 말이 부장되지 않았다. 그러나 11호 남성은 나무무덤방에 안치되었지만 말이 없는 경우이다. 말이 부장된 13호 남성과 비교해 볼 때 무덤방의 크기는 거의 비슷하지만(표 참고) 무덤상부를 덮은 돌의 범위는 작다. 또 무덤방을 만든 나무의 직경이 크지 않다.

 

 

  이 그룹에서 여성과 남성의 비율이 같아서 서로의 짝이 있어 보이지만, 9호 여성은 유물이 한점도 출토되지 않아서, 유물의 공통성을 통해서 찾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유물의 공통성을 통해서 서로의 짝을 찾는 것은 아르잔-2호의 5호무덤에서 알 수 있다. 아르잔-2호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유물에는 서로가 공통된 동물문양장식을 하고 있었다. 남성의 철제 칼에 장식된 금박 장식은 여성의 목걸이 장식과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아르잔-2호 0606, 0602 포스팅 참고). 물론 아르잔-2호의 5호무덤은 남녀가 합장되었기 때문에 이런 점이 아니라도 서로가 짝이라는 것은 알 수 있지만, 스키타이 문화에서 서로가 비슷한 문양을 가지고 있는 관계가 서로의 짝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림 1.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10호 여성무덤

 

그림 2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11호 남성무덤

 

그림 3.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13호 남성무덤

 

10호 여성의 경우는 동물문양장식이 머리맡에서 나와서 모자에 달았다(그림 1-4,5). 그러나 11 호남성은 동물문양 장식이 없고 모자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13호 남성의 머리 위에서 금박(그림 3-9)이 남았는데, 산염소의 뿔 형상과 비슷하다. 모자의 장식이었을 것이다. 10호와 13호 남녀가 모자를 쓰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무덤호수

성별

그룹

무덤시설

크기

말 매장

상부직경(m)

시설(cm)

첫 번째열

 

1

아이

1그룹

통나무관

 

0

 

5세기

2

나무무덤방

 

1

 

 

3

나무무덤방

 

2

 

 

4

석관묘

 

0

 

 

5

나무무덤방

 

0

 

 

6

아이(남향

2그룹

나무무덤방

 

0

 

 

7

남녀

나무무덤방

 

2

 

 

8

여성(서향)

나무무덤방

 

0

 

 

9

여성

3그룹

석관묘

7

140×80

0

 

 

10

여성

나무무덤방

7

160×100

1

 

 

11

남성

나무무덤방

5-6

230×140

0

 

 

12

아이

석관묘

7

160×110

0

 

5세기

13

남성

나무무덤방

7

240×150

1

 

4~3세기

14

아이

석관묘

5

120×100

0

 

 

15

남성여성남성

 

나무무덤방

 

1

 

 

16

여성

 

석관묘

 

0

 

4~3세기

17

여성

4그룹

석관묘

 

0

 

4~3세기

18

남성

석관묘

 

0

 

투르크시대

19

 

투르크

 

 

 

20

 

투르크

 

 

두번째열

4~3세기

21

남성

석관묘

 

0

 

 

22

남성

나무무덤방

 

2

 

4~3세기

23

남성

석관묘

 

2

 

 

24

무덤없음

무덤없음

 

 

 

4~3세기

25

남성

석관묘

 

1

 

5세기

26

남성

5그룹

나무무덤방

 

2

 

 

27

여성

나무무덤방

 

0

 

 

28

여성

나무무덤방

 

0

 

 

29

여성

나무무덤방

 

2

 

 

30

남성

나무무덤방

 

1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2 : Курганы Сайлюгема. Новосибирск: 1992. 22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 바르부르가지 I유적에서는 스키타이 시대 무덤 28기가 확인된다. 한 계곡에 함께 매장되었으니 한 친족 집단이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그룹이 있다. 쿠바레프는 남북방향으로 서 있는 무덤 가운데 중앙에 남성의 무덤이 위치하고 앞과 뒤쪽에 여성 무덤이 들어선다고 보았다. 예를 들면 2호와 3호는 남성무덤, 그 앞 1호는 아이, 그 뒤는 4호와 5호는 여성무덤인데, 한 그룹으로 보았다. 6~8호도 7호의 남녀의 합장 무덤 앞 뒤로 아이와 여성무덤이 배치된 경우이다. 9~14호도 하나의 그룹이다. 11호와 13호 남성을 중심으로 아이와 여성이 앞 뒤로 배치되어 있다. 이렇게 남성을 중심으로 앞 뒤에 아이와 여성이 배치되는 구조는 바르부르가지 유적에서 3그룹이 있다. 쿠바레프의 자세하지 않은 설명이다.

 

17~25호를 한 그룹으로 묶었다. 17호와 18호는 열이 다르지만 출토된 유물이 21~25호 무덤과 비슷해서 묶은 것이다. 특히 17호와 18호에서 출토되는 동물문양은 목제로 제작된 것으로 ‘알타이 동물문양장식’(그림 2-3,6)이라고 명명했다. 19호와 20호는 투르크 시대 무덤이고, 24호는 아래에 아무런 무덤이 없는 덮힌 돌만 발견되었다. 16호는 무덤이 매우 소략해서 17호와 같은 석관묘이지만 같은 그룹으로 묶지 않았다.

 

 

무덤호수

성별

그룹

무덤시설

말 매장

첫 번째열

 

1

아이

1그룹

통나무관

0

 

5세기

2

나무무덤방

1

 

 

3

나무무덤방

2

 

 

4

석관묘

0

 

 

5

나무무덤방

0

 

 

6

아이(남형

2그룹

나무무덤방

0

 

 

7

남녀

나무무덤방

2

 

 

8

여성(서향)

나무무덤방

0

 

 

9

여성

3그룹

석관묘

0

 

 

10

여성

나무무덤방

1

 

 

11

남성

나무무덤방

0

 

 

12

아이

석관묘

0

 

5세기

13

남성

나무무덤방

1

 

4~3세기

14

아이

나무무덤방

0

 

 

15

남성여성남성

 

나무무덤방

1

 

 

16

여성

 

석관묘

0

 

4~3세기

17

여성

4그룹

석관묘

0

 

4~3세기

18

남성

석관묘

0

 

 

19

 

투르크

 

 

 

20

 

투르크

 

두번째열

4~3세기

21

남성

석관묘

0

 

 

22

남성

나무무덤방

2

 

4~3세기

23

남성

석관묘

2

 

 

24

 

무덤없음

 

 

4~3세기

25

남성

석관묘

1

 

5세기

26

남성

5그룹

나무무덤방

2

 

 

27

여성

나무무덤방

0

 

 

28

여성

나무무덤방

0

 

 

29

여성

나무무덤방

2

 

 

30

남성

나무무덤방

1

표.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무덤(김재윤 작성)

 

 

그림 1.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16호(상)와 17호(하)

 

그림 2.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17호 유물

 

마지막 그룹은 26~30호인데 나무무덤방에서 매장된 그룹이다. 앞뒤로 남성이 배치되고 중앙에 여성이 배치되었다.

앞서 살펴본 울란디르크 계곡의 유적과 유스티드 계곡, 파지릭 계곡의 유적과 비교해 볼 때 가장 빨리 만들어진 무덤은 2,13,26호로 기원전 5세기의 무덤이다. 14호, 17, 18, 21, 23, 25호 무덤은 기원전 4~3세기에 만들어진 무덤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속해 있는 무덤의 그룹은 만들어진 순서가 정해질 것이다.

 

2호,13호, 26호가 속한 1그룹(표 참고)과 5그룹, 3그룹이 가장 먼저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3그룹 무덤 가운데 14호 무덤은 기원전 4~3세기 가량임으로 1그룹과 3그룹 보다는 늦게 만들어졌을 수 있다.

 

1그룹, 5그룹-> 3그룹-> 4그룹의 순서로 무덤이 들어섰다.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28기 무덤은 가장 앞 열과 뒷 열의 무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중앙을 채워가는 방법이다. 물론 쿠바레프는 이 점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룹화 된 무덤과 연대를 바탕으로 필자가 복원한 것이다. 2그룹과 15호, 16호는 유물을 비교하면 좀 더 정확하게 유적에 들어선 무덤 순서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한 그룹은 한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와는 어떻게 다른 지는 모르겠지만 그 그룹이 모여서 할 수 있는 행위는 같이 밥 먹기, 같이 이동하기 등등이 해당될 것이다.

 

이 유적에서는 탄소연대측정은 딱 1기에서 확인되었는데, 4호 무덤이다. 보정연대로 기원전 490년에 해당된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은 답답하실 것이다. 왜 좀 더 세밀한 분석을 못하는지에 대해서..이 유적을 발견한 것은 1968년이고 유적 전체를 발굴완료한 것은 1978년이다. 바르부르가지I유적이 보고된 책이 나온 해는 1992년이다. 1991년은 소비에트 연방이 망한(페레스트로이카) 해이다. 이 유적의 탄소연대측정이 단 한건만 이루어진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당시에는 모든 게 뒤바뀌면서 배급이 끊어지고 먹을 것이 없었다고 한다. 모든 것이 국가의 지원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그 지원이 끊긴 상황에도 그래도 책을 낸 쿠바레프 박사와 이를 지원한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에 응원을 보내야 한다..늘 느끼는 거지만 국가의 재력은 학문의 수준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2 : Курганы Сайлюгема. Новосибирск: 1992. 22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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