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인을 두고 ‘동양인의 사상을 한 유럽인’이라고들 한다.
필자는 그런 이야기와 꼭 맞는 예를 전공하고 있는 고고학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이제 000기념논총 이런 것이 거의 없어지다 시피 했다. 정년기념논총, 회갑기념논총 등 대학자 혹은 스승을 기리는 논문을 엮은 것이다.
그런데 러시아는 아직도 그런 것을 만든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보다 더 보수적이다.
이런 인물 중에 한 명으로 오클라드니코프가 있다. 이 분은 돌아가신지가 30년이 넘었지만 필자가 유학할 당시 2008년에 탄생 백주년 기념논총을 보았다. 새삼 러시아에서 그 분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그림1. 오클라드니코프 선생 탄생 백주년 기념논총)
대략 러시아 고고학의 아버지? 정도라고 하면 맞을 것이다.
소련아카데미 아카데미 학술회원이고 연해주를 포함해서 시베리아 전역을 누비며 수많은 조사를 하였다.
*한국에서 연구자는 대학교수가 되기를 바라지만, 러시아에서는 아카데미 학술회원이 되길 바란다. 소련시절에는 3D업종이 대학교수,의사였다고 하니...(아이러니 하게도 공산주의 시절에도 돈 많이 못 버는 직업이 가장 비 인기직종이었다. 두 그룹이 가장 돈 못 버는 계층이라고 한다. 현재는 그 정도는 아님). 연구자는 아카데미의 연구원을 거쳐서 아카데미 학술회원이 되는 것이 가장 큰 명예이다. 대학교수는 아카데미 연구원이 되지 못하면 가는 곳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러시아도 교육체계를 대학 중심으로 많이 바꾸고 있긴 하지만 러시아과학아카데미는 대학의 상위기관이다(학부제도가 없고 전문가 양성기관으로 대학원만 존재한다). 중국(사회과학원), 북한(사회과학원) 등 기타 공산국가들도 모두 이 제도를 표방하였다.
그가 조사한 유적은 시베리아의 부레티 동굴 유적부터, 앙가라 강의 신석기시대 유적, 아무르 강 하류의 사카치 알리안, 콘돈 유적, 루드나야 프리스탄, 수추섬, 시미파트나야, 수추 섬 등 다양하다. 아직도 각종 논문에서 거의 첫 장에 그의 이름이 발견된다. ‘이 유적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조사한 사람은 오클라드니코프 다’
(그림 2. 사카치 알리안의 오클라드니코프)
(그림 3. 메드베쥐야 소프카 유적의 오클라드니코프)
(그림 4. 세레미테보 암각화유적의 오클라드니코프)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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