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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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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가이 문화의 유적은 연해주 전 지역에 분포하고 있지만, 마르가리토프카 문화의 유적은 연해주의 동부지역(해안가)에만 위치하고 있다(http://eastsearoad.tistory.com/145?category=737917의 그림 1 참고). 현재의 자료로는 시니가이 문화와 마르가리토프카 문화 사이의 공백기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고고학 현상과는 차이가 있다.
  연해주 내륙의 신석기 후기 단계에는 레티호프카 유적, 시니가이 A유적, 아누치노-14, 노보셀리쉐-4유적 등 신석기시대 후기 유적에서는 반드시 그 상층에서 시니가이 문화 청동기시대 층이 확인된다.
 뿐만 아니라 청동기시대 주거지에서는 신석기시대 토기가 주거지 바닥에서 확인된다. 레티호프카 유적의 절대연대는 이어지는 시니가이 문화의 연대와 이어지고 있다.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가 단절적이지 않은 점은 여러 가지 정황이 확인된다.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변화는 토기에서 확인된다. 신석기시대 외반 구연의 발형토기(그림1-1,2)는 마르가리토프카 문화에서는 토기 기형의 기고가 짧아지면서 발형에서 많이 변형되었다(그림1-8). 이 변화는 전고(김재윤 2011)에서 뇌문토기 기형에서 변화한 것으로 보았다. 뿐만 아니라 시니가이 문화의 토기도 신석기시대 외반 구연 발형토기가 청동기시대가 되면서 구연부가 좀 더 외반하면서 옹형(그림 1-9)화되었다. 일부 토기는 경부가 좀 더 길어지고 호형으로 변하며, 무문화되었다(그림 1-12). 

그림1


 뿐만 아니라 구연부에서도 변화가 보인다. 신석기후기의 구연부에 돌대를 부착하거나 구연단에 접해서 이중구연(그림 2-1~3)처럼 붙는 제작방법은 청동기시대문화(그림 2-4~9)에서도 이어진다. 호형토기의 구연부는 외반하면서 약간씩 접고 그 상단을 손으로 눌러서 마무리 하면서 퇴화 이중구연(그림 2-10)처럼 보인 것도 있고, 일부는 구연단화 되어 홑구연(그림2-11)이다. 

그림 2

 이를 신석기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자연스러운 변화를 직접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유적은 레티호프카 유적와 아누치노 29이다. 레티호프카 유적 04년도 수혈과 아누치노 29 유적에서 무문 봉상파수부 토기(그림 3-1~6)가 모두 출토되었으며, 이는 서부 2유형인 시니가이 A유적의 중층에서도 출토되었다. 또한 이와 함께 신석기 문양이 그려진 높이 60cm 가량의 구연부 외반된 발형토기(그림 1-6)가 유사한 기형으로 문양이 없는 토기(그림1-7)가 시니가이 서부 2유형에서 출토된다. (http://eastsearoad.tistory.com/142?category=737917의 그림 1-2)이 토기는 기고보다는 동최대경이 훨씬 더 큰 독특한 기형으로 청동기시대에도 그대로 유지된다.
 만약 몇 백년간 단절이 있었다면 거의 유사한 형식의 토기가 비슷한 지역에서 출토되는 것이 가능할까?

그림 3

 특히 직접 발굴에 참가한 바 있는 레티호프카 유적의 04년도 수혈에서는 편평 석부, 성형석부, 환상석기, 석검의 봉부 등은 이 지역 신석기시대에서는 출토되지 않는 마제석기(그림4- 6~12,15,17~19)가 수혈의 바닥에서 출토되었다. 아누치노 29 유적에서도 다른 신석기후기 유적에서 확인되는 타제석촉과 함께 마제석부, 마제석착(그림 4-5,13,14,16) 등이 출토된 바 있다. 필자는 레티호프카 유적이 이미 신석기시대 후기가 아닐 가능성도 있음을 밝힌 바 있고, ‘전환기’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김재윤 2004, 김재윤 2017).
 토기 뿐만 아니라 곡물자료도 레티호프카 유적의 시대에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04년 수혈에서는 조와 기장이 출토되었는데, 그 형태와 수가 신석기후기의 다른 유적에서 출토되는 것과는 다르다(세르구세바)는 점도 이를 뒷받침 한다.

그림4

이 문제는 시니가이 문화의 연대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측정된 연대로만 시니가이 문화의 시작시기를 알 수 없다. 현재 이 문화는 연해주에서 유적조사가 그렇게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 시작되었을까?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