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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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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은 아마도 모두들에게 기억에 남을 것 같은 그런 날일 것 같다.

필자도 새마음 새뜻으로 새로운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블로그에 들어오기 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쓰고 있지 않았지만 몸도 편하지 않았고, 항상 찝찝한 느낌 때문에 마음은 더 불편했다. 핑계를 댄다면, 새 학교에 적응하는 것에 가장 신경을 썼고, 여러 건의 연구비 보고서와 결과물도 있다. 지금도 여전히 다 완성하지는 못했다.

그 중에 하나는 2022년 선정된 명저번역이다. 러시아 대표 흉노연구가인 구밀료프의 첫 단행본이자, 대초원 삼부작 1편인 흉노에 대한 책이다. 한참 번역중이고, 책은 너무 재밌는데, 중국 사료에 나오는 단어(사람이름, 책 이름)를 원문으로 찾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하고 있다. 연구비 받은 거라서 아마도 결과물이 나와야 공개는 가능할 것 같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정보(사료와 고고학 자료)를 바탕으로 한 구밀료프가 이해하는 흉노를 바라보는 관점은 매우 다이나믹 하다. 또 이런 연구를 가능하게 한 비추린의 업적은 매우 놀랍다. 중국사료를 러시아어로 번역해서, 후대에 러시아연구자들이 장벽 없이 중국사료를 이용하도록 했다. 물론 잘못된 오역들도 존재하지만....

책의 볼륨은 크지 않지만 워낙 많은 참고문헌을 바탕하고 있고, 구밀료프 문장들의 뉘앙스가 있어서 번역하기가 아주 쉽지는 않다. 어떤 날은 한 단락 번역하고 집에 가기도 한다(번역이 일사 천리로 되지 않는 다는 핑계....)

 

스키타이 문화의 인간형상물이 극대화 되고 나서, 이 문화가 점차 사라졌다는 의견을 마지막으로 했었다. 기원전 4세기 흑해지역은 사르마트 문화, 시베리아 동부에는 흉노가 발흥했다. 흉노의 기원에는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지만, 어떤 요소들은 스키타이 문화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데 동물문양장식이다. 또 흉노과 주로 활동한 지역과는 차이가 있지만 스키타이 문화일 때 미누신스크 지역 문화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살았다. 이 곳의 기원전 4세기 까지문화는 타가르 문화이다. 타가르 문화에서도 거대한 고분이 확인되었는데, 이를 포스팅한 바 있다.

 

2020. 12.03. 미누신스크 수장의 무덤

2020.12.0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중부/타가르문화] - 시베리아 기원전 7세기 미누신스크 수장의 무덤

 

시베리아 기원전 7세기 미누신스크 수장의 무덤

스키타이 문화 중에서 미누신스크 분지의 지역에서는 타가르 문화가 기원전 7세기부터 번성했다. 가장 잘 알려진 유적으로 살브이크 쿠르간은 1955년, 1956년 발굴되었는데 이 무덤을 볼쇼이 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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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3세기 이후에 미누신스크 분지에서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다시 나오기 시작한 것은 기원후 1세기(혹은 기원후2세기) 부터이다. ‘타슈트익 문화라고 부르는데, 예니세이 강변의 오글라티 유적이 대표적이다. 무덤으로 건조한 기후 덕분에 인골들이 남아 있다. 인골의 얼굴에는 점토로 된 마스크가 씌여진 것이 확인되었다. 여성의 얼굴에는 ’화이트 마스크‘로 붉은 문양이 있고, 남성의 얼굴에는 ’레드 마스크‘가 씌여진 것이 각각 발견되었다. 또 이 남성의 몸에는 어깨 부위에 문신이 남아 있었다.(앞선 문화의 연장선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림 1. 기원후 4세기 오글라티 유적 출토, 여성(좌)과 남성(우)의 점토 마스크 

 

유적이 워낙 오래전에 발굴되어서(1903년) 정확한 정황은 잘 알 수 없다. 단지 이 지역의 문화였던 타슈트익 문화의 유적이고, 점토로 된 데드 마스크와 같이 뚜렷한 유물 외에는...

 

그리고 비추린(1950)에 따르면 3세기경 에니세이 강변에 살던 사람들은 정녕이라고 불리는 동아시아계통의 민족이다. 타슈트익 문화의 유적은 20세기 초반에 발굴되어서, 최근의 자료는 많지 않다. 100년 댕기거나 100년 늦추거나 하는 편년작업외에는...대신에 북방 여러 민족의 무기를 연구하는 관점에서 이 문화의 무기를 연구한 솔로비요프의 연구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Александр Соловьев, «Сибирское вооружение: от каменного века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 Новосибирск, 2003 г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초원의 초기 철기시대 스키타이 문화권 가운데서 가장 중앙에 위치한 카자흐스탄에는 다양한 무덤구조가 발견된다. 카자흐스탄 우측에 위치한 알타이 및 투바지역은 스키타이 문화권의 동부, 흑해지역은 대략 서부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양 지역 무덤이 몇 개의 형식으로 정해지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카자흐스탄 중부 지역에 흐르는 자를리 강변의 누르켄-2 유적에서는 연도가 있는 무덤이 발견되었다. 무덤의 입구와 연도, 매장주체부를 구분해서 돌로 덮어서, 무덤의 구조가 잘 드러난다. 이 유적과 가까운 곳(직선거리 5km 이내) 세렉티-1 유적에서는 또 다른 무덤 구조가 발견되었다.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외관상으로 드러난 직경은 50m로, 가장 상부는 돌로 덮은 것이었지만, 그 내부는 좀 복잡하다. 무덤구덩이는 장방형이고 연도(길이 2.75m)가 서쪽으로 있는 모습의 매장주체부이다. 그러나 입구는 봉분과 연결되지 않았다. 매장주체부에는 돌과 함께 흙을 채웠고 그 상부를 점토 덩어리로 덮었다(직경 34m, 그림 1의 평면도와 단면도 참고). 점토덩어리로 채운 경계와 떨어진 곳에 호석을 둘렀는데, 그 곳을 기준으로 한 직경 45m이다.

 

그림1. 세렉티-1 유적의 10호 평면도와 단면도

 

세렉티-1 유적에서 ‘연도(무덤안의 복도)’라고 불리는 시설은 입구와 연결되지 않아서 실제로 연도인지는 의문스럽다. 카자흐스탄 연구자들은 연도라고 분류했다.

 

그림 2. 세렉티-1 유적의 점토 덩어리

 

특이한 점은 무덤 내부를 채운 점토 덩어리이다(그림 2). 1960~70년대 발굴된 타스몰라 문화에서는 보고된 바 없으나, 2000년대 이후에 발굴된 유적에서는 점토덩어리가 무덤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이 발견되었다.

 

세렉티-1 유적, 탈디-2 유적, 나자르-3 유적 등 카자흐스탄 중부지역에 위치한 많은 스키타이 시대의 많은 유적에서 발견되는 무덤축조 재료 중에 하나이다. 이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건축재료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돌을 구할 수 없으니, 대안일 것이다.

 

이 무덤의 매장구덩이는 길이 3m, 깊이는 0.25m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무덤구조물을 특별히 만들지 않았고, 매장구덩이 안에 납작한 석판을 구덩이 중앙에 세워 놓았다. 아마 더 이상의 무덤구조물은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연도는 단을 만들어서 무덤바닥으로 내려 가도록 되어 있다(그림 3). 바닥에서는 뼈로 만든 빗, 철제품, 청동화살촉(그림 3-2~4)이 나왔다.

 

그림3. 세렉티-1 유적의 무덤구덩이(1)와 출토유물(2~4)

 

세렉티-1 유적을 보면 매장주체부 보다는 무덤을 크게 만드는데 더 주력했다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직경 50m, 높이 3.9m로 만들기 위해서 점토 덩어리를 대량으로 써서 무덤을 높고 크게 만들었다. 인접한 누르켄-2 유적과 불과 5km 내외에 위치했으며, 동시대의 무덤인데, 이렇게 외관과 내부구조가 다른 무덤이 있다는 점은 생각해 볼 부분이 많다.

 

 

참고문헌

 

Бейсенов А.З. Дромосные курганы сакской эпохи на реке Жарлы (Центральный Казахстан). // Самарский научный вестник. – Самара: СГСПУ, 2016б. №3 (16).– С. 77–86. 베이소노프 2016, 카자흐스탄 중부의 자를리 강에 위치한 사카시대의 연도가 있는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유라시아 초원의 중간에 위치한 카자흐스탄 지역에 위치한 스키타이 문화의 여러 무덤은 각 지역 마다 만드는 방법이 다르다. 카자흐스탄 동부인 산악지대와 인접한 지역은 그래도 유적간의 공통성이 있지만, 카자흐스탄 중부와 서부 지역은 유적 마다 공통성이 빈약하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하다. 스키타이 문화권의 동부(시베리아)와 서부(흑해부근)처럼 어떤 특징으로 묶이지 않는다.

 

앞의 포스팅에서 카자흐스탄 중부에 위치한 스키타이 문화권의 지역문화를 타스몰라 문화라고 일컫는다고 했다. 이 문화에서는 ‘수염이 달린 고분’이 특징이라고 했는데, 고분 뒤에 길게 이어진 석열이 마치 수염과 같다고 해서 붙인 별명이다.

하지만 이런 석열이 길게 딸린 고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고분도 많다. 특히 2000년대 이후에 발굴된 유적은 석열이 없어도 ‘엘리트’의 무덤으로 생각되는 유적이 발견되었다.

누르켄-2 유적, 세렉티-1 유적등은 연도(무덤 입구에서 매장 주체부로 들어가는 무덤의 복도)가 있는 무덤이다. ‘연도’는 흑해지역 무덤에서도 관찰되었지만, 이 지역의 연도는 봉분 안에 설치된 것으로 외부로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에서 발견된 연도가 있는 무덤은 입구부터 연도, 매장주체부를 돌로 덮었는데, 각 부위만을 덮어서 무덤구조가 드러난다.

대표적인 무덤이 누르켄-2 유적이다. 이제까지 살펴본 무덤구조와는 전혀 다른데, 입구부터 지하로 들어간 연도와 무덤방의 바닥 높이가 같다. 지하라고 표현했지만 깊이 1m(2호기준)정도이고, 연도와 매장주체부까지 납작한 돌을 세워서 축조했다(그림 1-2). 매장주체부는 납작한 돌을 눕혀서 무덤 벽을 쌓아 올린 것이다(그림 1-3).

 

그림 1. 누르켄-2 유적 1호

 

그림 2. 누르켄-2 유적 2호

 


최상부의 돌로 덮힌 부분(m) 납작한 판돌로 덮힌 부분(m) 무덤방(m) 무덤구덩이(m) 연도(m)
1호 직경 41
높이 4.3
직경 38 직경 10
높이 1.15
2×2.2×0.75 15×1×0.7
2호 직경 54
높이 6.1
직경 52
3×2.75×1 11×1×0.7

 

1호와 2호는 매장주체부의 지붕 모양이 다른데, 2호(그림 2)는 천장이 둥글게 만들어진 것이다. 무덤의 벽은 역시 납작한 판돌을 눕혀서 세운 것이다. 1호와 2호 모두 판돌 위는 다시 돌로 덮었다.

 

 

무덤의 구조상 도굴이 성행 할 수 밖에 없다. 무덤을 대강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규모가 크고, 그렇다고 어떤 규칙성에 의해서 꼼꼼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도 없다. 외형만 크게 만드는 경쟁이 일어났나 싶은 생각도 든다. 누군가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내가 우리 아버지 무덤을 이렇게 크게 만들었다.. ’이런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참고문헌

 

Бейсенов А.З. Дромосные курганы сакской эпохи на реке Жарлы (Центральный Казахстан). // Самарский научный вестник. – Самара: СГСПУ, 2016б. №3 (16).– С. 7786. 베이소노프 2016, 카자흐스탄 중부의 자를리 강에 위치한 사카시대의 연도가 있는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카자흐스탄의 기원전 4세기 유적인 이식 쿠르간에서는 황금인간이라는 별칭이 붙은 소년의 무덤이 발굴되었다. 매장주체부는 이미 날아간 상태여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지상식 목조구조물이 남아 있는 두 개의 공간중에 남쪽에 위치한 목조구조물에는 의복을 입은 십대 남성과 토기, 목기 등 그릇이 부장된 채 발견되었다.

 

십대 남성은 황금으로 장식된 옷을 입고 있었는데, 양 쪽 허리에는 철제 검 2자루를 착장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오른쪽 허리의 검은 손잡이 끝장식에 그리핀 두 마리가 서로 마주보는 장식이 달려 있는 스타일로 카자흐스탄 보다 훨씬 북쪽인 미누신스크 분지의 유적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유물이다.

 

그런데 이 검은 검집에는 담겼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곳에 달았던 황금장식판만 남아 있다. T자 모양으로 생긴 검집의 입구와 하단에 달았다. 입구에는 큰 사슴, 하단에는 말이 프레임 속에 들어 있는 모양이다(그림 1). 그런데 여기에 새겨진 동물장식은 모두 몸을 S자형으로 표현하고 있다. S자형으로 몸을 꼬는 자세는 고깔모자의 호랑이 장식에서도 발견된다.

 

 

그림 1. 카자흐스탄 이식 쿠르간의 검집 장식

 

S자형 맹수장식은 스키타이 문화 서부지역(흑해)과 동부지역(알타이 및 중앙아시아)에서 기원전 4세기경에 모두 발견된다. 서부지역에서는 마구장식으로, 동부지역인 알타이에서는 파지리크 유적에서 말의 안장 덮개인 펠트에서 확인되는 문양이다. 뿐만 아니라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에서도 볼 수 있다.

 

2021.05.26 - [스키타이 동물장식] - 스키타이 문화에서 S형 맹수장식

 

스키타이 문화에서 S형 맹수장식

흑해 주변의 스키타이 문화에서 기원전 4세기는 대변화의 시대였다. 그리스 유물에 스키타이 스타일, 스키타이 유물에 그리스 스타일이 뒤섞이고, 이런 유물이 가장 많이 출토되는 곳은 쿨-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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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지역에서 S자형으로 몸을 꼬고 있는 동물은 맹수가 대상이지만, 이식 유적에서는 큰사슴과 말도 그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스키타이 문화의 핫스팟인 두 지역(흑해부근과 알타이)과 차이가 있다.

게다가 이 유적에서는 원형맹수장식도 함께 발견 되는데, 허리띠 장식이다. 원형맹수장식이라고는 하지만 동물은 표범이나 호랑이 등 범이 아닌 늑대이다. 늑대얼굴의 S자형 동물장식은 파지리크 유적(그림 3)에서 출토된 바 있다.

 

그림 2. 카자흐스탄 이식 쿠르간의 허리띠 장식, 원형맹수(늑대)장식

 

그림 3.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 출토 맹수장식

 

이 남성의 허리띠 장식은 다리를 접은 사슴의 변형된 문양이 표현되었다. 다리를 접은 사슴은 카자흐스탄 동북부의 실릭티 유적(그림 5)에서 이미 기원전 7세기에 발견된 바 있다. 하지만 이 유적의 유물은 변형되었는데, 엉덩이 부위를 약간 들고 있어 엉거주춤한 자세로 변화가 있다. 또한 뿔의 표현 가운데 앞으로 뻗은 가지가 2개인 점도 다르다. 더욱이 사슴은 날개를 달고 있는데 그 끝에 그리핀 얼굴이 장식되었다. 더 부분적으로는 엉덩이에도 파상의 홈이 새겨져 있으며 가지와 다리도 2줄의 홈을 넣어 더 새밀한 느낌이 들도록 가공되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실릭티 유물에 비해서 훨씬 근육표현이 뚜렷하게 보이도록 가공되었다는 점이다.

 이마 앞으로 뿔이 2개로 표현된 점, 몸의 근육을 크게 표현한 점은 흑해지역 기원전 7세기에서 볼 수 있는 방법이다. 사슴과는 다른 종인 '엘크(큰 사슴'라고 불리는 동물 머리, 날개와 수염의 존재, 가지와 다리에 홈을 낸 점은 어느 지역에서도 볼 수 없던 방법으로 카자흐스탄 지역성이 뚜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림 4. 카자흐스탄 이식 유적의 허리띠 장식

 

그림 5. 실릭티 유적 출토 사슴장식

 

S자형 동물장식이 흑해지역에서 나오고, 페르시아 동물장식에서 S자형으로 몸을 꼬는 자세가 스키타이 문화로 유입되었다고 해도, 카자흐스탄 이식 유적은 스키타이 서부 지역보다는 알타이의 요소가 더 확인된다. 100%동일하지는 않지만 자기 지역색이 더해진 동물장식이다. 같은 성격의 유물이 남성의 허리띠 장식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십대의 남성 복장에서 다른 사람이 가장 주목하는 것은 고깔모자(그림 6)였을 것이다. 고깔모자에는 동물 외에 산(山)이 표현되었는데, 이식 유적은 평지에 위치하기 때문에 유적과는 다른 지역을 의미할 수 있다. 가깝게는 천산이 위치하고, 약간 먼 북쪽에 위치한 알타이에 높은 산이 있다.

그림 6. 카자흐스탄 이식 유적의 고깔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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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의 남성들은 동물장식이 달린 고깔모자를 썼고 이를 동경했던 사람들이 이식 유적의 고깔모자를 만들어 무덤속의 십대 남성에게 씌었을 수 있다.

 

참고문헌

 

Акишев К.А. 1978 : Курган Иссык. Искусство саков Казахстана. М.: «Искусство». 1978. 132 с.(아세세프, 1978, 이식 쿠르간, 카자흐스탄 사카 사람의 예술)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카자흐스탄 동부의 기원전 4세기 이식 유적에서는 화려한 의복과 고깔모자를 쓴 소년이 발굴되었다. 매장주체부의 모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소년이 입고 있던 의복과 각종 그릇들은 남아 있었다.

 

앞서 포스팅한 바와 같이 머리에 쓰고 있는 고깔모자는 장식성이 강한데, 흑해 지역보다는 알타이 지역의 스타일과 비슷하다. 반면에 입고 있는 상의는 여밈이 있는 스타일로 여밈이 없는 알타이 지역의 의복과는 달리 흑해 부근에서 발견되는 전사 모습이 새겨진 유물에서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스키타이 문화의 전사들은 매장될 때 의복 뿐만 아니라 자신의 무기도 착장하고 매장되었는데, 활과 화살을 담은 고리트, 칼과 검, 투부(전투용 도끼)가 그 대상이다.

 

이식 유적의 소년도 무기를 착장했는데 스타일이 다른 철검 2자루이다. 오른쪽의 철검이 좀 더 길었지만(그림 1의 오른쪽), 검신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병부와 신부를 함께 주조한 것으로 금으로 상감된 유물로 손잡이의 모습은 T자형이다. 손잡이에는 얇은 금사를 꼬일처럼 감았고, 검날멈추개는 V자형이다. 다른 한점은 소년의 왼쪽에서 발견된 것인데 단검이다. 검날 멈추개와 손잡이 모양은 긴 검과는 차이가 있다. 특히 손잡이 끝에 두 마리 그리핀이 얼굴을 맞대고 있는 모습이고, 검신의 중앙에는 동물 22마리가 장식된 띠(그림2)가 부착되었다.

 

 

그림 1. 이식 유적의 황금인간 쿠르간에서 출토된 철제 검

 

그림 2. 이식 유적의 황금인간 쿠르간에서 출토된 철제 검의 부분, 그림 1의 왼쪽과 동일

 

비교적 긴 철검은 손잡이의 모습, 신부와 검날멈추개의 모습 뿐만 아니라 철에 금을 상감했다는 점에서 필리포프카 유적의 검과 비교할 수 있다. 이 유적은 우랄 남부에 위치하는데, 카자흐스탄 북쪽의 유적이다.

2020.11.2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우랄 남부/필리포프카 유적] - 우랄 남부의 스키타이 말 탄 전사

 

우랄 남부의 스키타이 말 탄 전사

우랄 남부의 스키타이 문화(사브로마트-사르마트 문화)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골제로 만들어진 말 탄 전사 조각상이 발견되었다. 이 남성은 고리트(스키타이식 활과 화살통)를 차고 있었고,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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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철검으로 짧은 검(그림 1-왼쪽)은 손잡이와 검의 신부 경계인 검날멈추개가 ‘V’자형이라기 보다는 ‘나비형’이라고 불리는 형태와 더 유사하다. 나비형 검날멈추개가 달린 짧은 검은 동유럽 스키타이 문화(스키타이 문화의 서부)에서 종종 발견되는 유물이다. 그렇지만 검 신부 중앙에 동물이 새겨진 띠는 아르잔-2호(스키타이 문화의 동부)의 5호묘 남성의 철검에서 확인되는 제작방법이다. 더욱이 이식 소년의 검 끝을 동물장식으로 마무리하는 방법은 미누신스크 분지의 타가르 문화(스키타이 문화의 동부)에서 주로 발견되는 방법이다. 흑해지역의 나비형 검날멈추개가 달린 검의 손 잡이 끝장식은 주로 ‘( )’모양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에 동물장식이 달린 손잡이는 스키타이 문화 서부지역(유럽)의 특징은 아니다.

 

때문에 이식 유적에서 나온 아키나케스 검이라고 불리는 스키타이 단검은 스키타이 서부지역의 기본적인 형태에 손잡이 끝장식과 검신 장식판은 스키타이 동부지역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종합하면 이식 유적의 소년은 매우 복합적인 복장을 착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깔모자는 알타이 것을 참고로 하고, 상의는 흑해 지역의 것과 유사하며, 단검(아키나케스)도 스키타이 동부지역과 스키타이 서부지역을 참고로 했다. 하지만 어떤 것도 특정 지역의 것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표현방법, 만드는 소재에 따라서 재지의 특징이 가미된 것이다. 무기 착장에서도 철검을 2자루만 착용하고, 고리트와 투부가 없는 점도 알타이 전통과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알타이의 아크 알라하-1 유적의 2호는 어린 소년의 무덤이지만 소년의 체격에 맞게 소형의 고리트, 투부가 따로 만들어져서 부장되는 점과는 비교 된다.

 

참고문헌

Акишев К.А. 1978 : Курган Иссык. Искусство саков Казахстана. М.: «Искусство». 1978. 132 с.(아세세프, 1978, 이식 쿠르간, 카자흐스탄 사카 사람의 예술)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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