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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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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박물관/아르메니아조지아의 박물관'에 해당되는 글 2

  1. 2023.10.07 우라르투와 아르메니아, Colchis와 조지아2
  2. 2023.10.05 아르메니아와 조지아를 다녀온 이유15

아르메니아의 국립박물관은 역시나 광장에 위치한다. 광장과 박물관은 대부분의 유라시아 국가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도 국립역사박물관이 위치하고 있고, 블라디보스톡에도 중앙광장에 연해주주립박물관이 있다. 중국의 국가박물관도 광장에 있다.

조지아의 국립박물관도 광장과 매우 인접한 곳에 위치한다.

 

 

그림 1. 아름다운 아르메니아 예레반의 광장

 

그림 2. 예레반 광장 앞의 박물관

 

아르메니아는 박물관에 큰 관심이 없었다. 박물관 관리도 부실 한 편이었다. 물론 상대적이라 할 수 있다. 그에 비하면 조지아는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박물관도 매우 관리를 많이 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 부분은 현대사 혹은 현대정치와 관련이 많은 듯 했다. 아르메니아는 옆의 나라인 아제르바이잔, 튀르키예와 매우 사이가 않좋다. 아제르바이잔과는 아직도 분쟁(혹은 전쟁)중이고, 튀르키예와도 마찬가지이다. 아마도 기독교를 최초로 공인, 기독교국가, 그리고 자신들의 성지인 아라라트(대홍수 끝에 노아의 방주가 정박했다는 곳)를 빼앗다는 것 때문에 이슬람 국가들과 등지고 있는 것이었다. 덕분에 자신의 고대역사 연구도 크게 진전되지 못했다. 앗시리아와 견줄 만큼 강성했다고 하지만 우라르투의 이후 역사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지지 못했다.

 

그림 3. 예레반의 예레부니 성곽에서 보이는 아라라트, 눈으로는 이것보다는 잘 보였다.

 

반면에 조지아는 러시아에서 탈출하는데 힘쓴다. 아르메니아와는 달리 러시아말을 알아도 아는척 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 다 러시아말을 안다. 국가명도 그루지아에서 조지아로 변경하는 것 만 봐도 그렇다. 박물관에도 이런 점들이 녹아 있다.

 

분명히 스키타이 문화의 청동 화살촉들이 Trell 유적에서 출토된 것으로 표시되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다. 대신에 Cochian culture 문화로 설명하고 있다. 이 문화는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 철기시대까지 지속된 문화로 설명한다. 특정 고고학문화가 시대를 막론하고 지속되었다고 하는 것은 좀 억지 스럽다. 특히 기원전 700-400년 사이는 Colchis 라고 조지아의 해안(흑해)가 따라서 문화가 번성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에서 말한 유적은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주로 이 문화는 남쪽과 관련시켜서 이야기 하지 코카서스 산을 넘지 않았다.

 

왜 이런 현상이 있을까? 라는 질문에 다다르게 되었을 때, 박물관 가장 위층에서 답을 찾았다. 러시아 볼셰비키들의 만행을 전시하고 있었다. 심지어 기차칸 까지 떼어내어서 전시중이었다. 그래서 알았다. 왜 조지아 사람들이 스탈린을 숨기고 싶어하는지.

 

 

 

너무 당연한 것일까? 잘은 모르겠다.

조지아 대통령궁전의 화려함과 그와 관련된 비리도 케이블카를 기다리는 와중에 들을 수 있었다.

 

아무튼 코카서스 남쪽까지 스키타이 문화의 영역으로 하기에는 너무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사실과 스키타이 문화 보다 청동기시대에 더 뚜렷하게 코카서스 북쪽과 닮았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아마도 북방인들은 남방인들을 막기 위한 완충제 역할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기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스스로 그렇게 자초하고 있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또 그럴 것이다.

 

김재윤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권(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에서 가장 이른 유적인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에서는 재지(스키타이 문화)의 유물 뿐만 아니라 외국(고대 이란과 그리스) 유물, 그리고 스키타이 귀족이 주문해서 생산한 유물이 나온다. 주문생산한 유물은 은제거울과 철제검이 있다.

 

은제거울에는 금판에 문양을 새겨서 접합했고, 철제검은 손잡이와 검집은 금으로 입히고 화려한 동물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특히 철제검의 손잡이와 검집 문양은 두 사람이 나무를 마주보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이 문양은 코카서스 남쪽의 고대 우라르투 왕(사르두우리 ii, 아르기쉬치 I)의 투구에 나온다. 또 반인반수도 고대 우라르투 왕의 의자를 장식하던 문양과 같다. 토프라흐-칼레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이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전시된 바 있다.

 

그림 1. 켈레르메스 유적의 검집 문양 중 일부(거의 유사한 유물이 멜구노프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그림 2. 켈레르메스 유적의 검집 문양 중 일부 2

 

그림 3. 우라르투 왕의 투구

 

이러한 정황들 때문에 스키타이 문화권에 우라르투를 포함시켜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만약에 포함시킨다면, 우라르투 북쪽의 현재는 조지아 땅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가 매우 고민되었다. 여기에는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르메니아와 조지아를 현지방문해서 사정을 알아보고, 결론을 내리고자 했다.

 

우라르투는 우라르투이고, 조지아는....현대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스키타이 문화권의 판단여부도 불분명하다는 결론. 우라르투는 역시 앗시리아와 북방의 스키타이 문화권을 연결 혹은 방어하던  역할을 했다. 

 

우라르투 이후의 앗시리아와 페르시아 문화가 이곳을 점령해서, 자기 색깔을 찾지 못했다. 또 그 이후에는 아마도 기독교가 밀려오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졌을 것이다. 현대 아르메니아의 적은 역시나 이슬람 문화이고, 조지아의 적은 러시아다.

 

 

김재윤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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