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산에서 무덤은 어느 계절에 만들어졌을까?
시베리아 남부의 알타이 산 파지릭계곡에는 2500년 전 무덤이 수십기 존재한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고분 5개는 1920년대 그랴즈노프와 1940년대 후반에 루덴코가 발굴했다. 무덤의 구조와 유물은 세계학계에 잘 알려져 있다.
이 무덤은 시베리아의 초기 철기시대로 기원전 9~8세기부터 시작되어 유라시아 전역에 퍼져 있던 스키타이 문화권의 한 일종이다. 알타이 지역에 위치한 문화를 파지릭문화라고 하는데, 이 문화의 명칭은 이 유적에서 유래된 것이다.
파지릭유적의 유물은 우리나라에도 한 번 온 적이 있다. 지난번에 소개해 드린 얼음공주와 그 유물은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 출토된 것으로 1995년에 서울과 부산에 다녀갔다. 파지릭 유적의 유물은 1991년 10월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스키타이 황금’이라는 이름으로 특별전을 한 적이 있다.
아마 어린 학생들은 잘 모르겠지만, 특별전은 예전 총독부 건물을 개조해서 사용했던 지금은 없어진 옛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되었다. 고르바초프가 한국에 다녀간 해에 파지릭유물특별전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파지릭 유적에서는 우코크 고원과 마찬가지로 무덤을 만들 때 말도 함께 매장한다. 파지릭 유적의 대형고분인 1~5호에서는 말이 함께 매장되었다.
러시아학자들은 얼음공주가 있었던 아크 알라하 유적이 있던 우코크 고원의 발굴 이전부터 말의 영양상태와 꽃가루 및 나무절단시기 등으로 무덤의 매장 시기를 추측했다.
파지릭유적에서 시도되었다.
파지릭 유적의 말은 털이 아주 고운 상태로 유지되어 묻혔는데, 겨울에는 볼 수 없는 상태이다. 즉 무덤은 겨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말의 영양상태와 관련해서 5호분에서 재밌는 현상이 확인되었다. 9마리 말이 매장되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화려한 굴레장식 한 말이 다른 말 보다 영양상태가 매우 좋았다. 그런 말의 상태는 겨울동안에도 잘 먹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3호분에서는 무덤방을 덮은 자작나무 껍질 사이에서 꽃(Scabiosa achroleuca L.)이 확인되었다. 이 식물은 여름 상반기 즉 6월말 또는 7월 초에 피는 것으로 그 때 무덤에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꽃 뿐만 아니라 이끼(Hylocomium)종류도 확인되었는데, 봄-여름동안에 자라는 것이다.
말 뿐만 아니라 나무도 무덤만드는 시기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부분적으로 절단된 자작나무와 무덤방을 덮은 자작나무 껍질(그림1)은 여름이 끝나고 가을에 껍질이 넓어지는데, 가을에는 껍질이 거의 벗겨지지 않는다. 즉 자작나무 껍질을 벗겨내는 기간은 봄과 여름이다.
파지릭 2호분에서는 어린 말이 매장되었는데, 송곳니로 살펴본 나이가 3살 반이라고 하며, 가을에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즉 무덤은 늦봄 혹은 여름초입부터 초가을에 만들어졌다. 재밌은 현상은 알타이에서 발굴할 수 있는 기간과 일치한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2호분은 말의 매장하는 위치가 앞에서 살펴본 유적들과는 달리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무덤방 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다.
그러나 말의 매장 위치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이 부분은 좀 더 다른 유적과의 비교관찰이 필요하다.

그림1. 파지릭 유적의 2호분 무덤 단면도(왼쪽은 발굴당시, 오른쪽은 복원)

그림 2. 파지릭 유적의 1~4호분에 매장된 말의 방향(하단 왼쪽에 2호분의 것이다.)
말이 7마리 매장되었는데, 3마리 씩 2열로 배치되고 나머지 한 마리는 방향을 달리해서 배치되었다. 그림과 같은 방향으로 일정하게 매장되었는데, 화살표의 끝방향이 말의 두향이다. 6마리는 동쪽을 향하고 있고 나머지 한 마리는 남쪽방향이다. 그러나 말이 놓인 상태가 아주 일정하게 규칙적이지는 않다. 당시에 무덤구덩이에 죽인 말을 넣는 방법은 밧줄로 매어서 하강시켰을 터인데, 한계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말은 이마를 타격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